미국에 사는 한국인 열명 중 하나는 입양아
2009 November 9
그리고 그들은 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살아왔단다.
여기 샌프란에서는 워낙 아시안이 많아서 잘 모르지만, 전에 살던 중부에서는 많은 한국인 입양아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커뮤니티는 유학생들, 거주민들, 그리고 입양아들로 삼분되어 있었고 (미군과 결혼한 이들도 조금은 있었지만) 서로의 교류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교회에 한번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거의가 밥도 따로 먹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합쳐진다는 것은 힘든 일로 보였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경계인’이었다. 미국에서 백인으로 생각하면서 자랐지만, 백인은 될 수가 없었고, 학교나 사회에서 차별의 대상이었고, 한국인들을 만나도 그 잘난 ‘순혈주의’ 때문에 또 차별을 당하고…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도 별 할 말이 없는 것은 나에게 이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진짜로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피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런 경계인들을 생각하면, 대학교 1학년땐까 농활을 같이 간 재미교포 소냐가 생각이 난다. 한국 말을 잘 못하면서도 전라도 해남까지 같이 가서 열심히 한국을 배울려고 했던 착한 아이였다. 여름이 끝난 뒤, 편지를 한두통 받았던 것 같은데, 영어로 편지를 쓰고 읽는 것이 싫어서 곧 그만 두었던 것 같다. 아마 지금 나와 같은 대륙에 살고 있을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신문 기사로 시작된 잡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여기 샌프란에서는 워낙 아시안이 많아서 잘 모르지만, 전에 살던 중부에서는 많은 한국인 입양아들을 볼 수 있었다. 대부분의 한국 커뮤니티는 유학생들, 거주민들, 그리고 입양아들로 삼분되어 있었고 (미군과 결혼한 이들도 조금은 있었지만) 서로의 교류는 거의 없었던 것 같았다. 교회에 한번 간 일이 있었는데, 그 때 사람들이 거의가 밥도 따로 먹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들이 같이 합쳐진다는 것은 힘든 일로 보였다.
그러고 보면, 그들은 ‘경계인’이었다. 미국에서 백인으로 생각하면서 자랐지만, 백인은 될 수가 없었고, 학교나 사회에서 차별의 대상이었고, 한국인들을 만나도 그 잘난 ‘순혈주의’ 때문에 또 차별을 당하고…
이 기사를 읽으면서, 그들의 고통을 함께 느끼면서도 별 할 말이 없는 것은 나에게 이들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생각하는 것인데, 진짜로 없었는지, 아니면 내가 피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런 경계인들을 생각하면, 대학교 1학년땐까 농활을 같이 간 재미교포 소냐가 생각이 난다. 한국 말을 잘 못하면서도 전라도 해남까지 같이 가서 열심히 한국을 배울려고 했던 착한 아이였다. 여름이 끝난 뒤, 편지를 한두통 받았던 것 같은데, 영어로 편지를 쓰고 읽는 것이 싫어서 곧 그만 두었던 것 같다. 아마 지금 나와 같은 대륙에 살고 있을텐데, 어떻게 살고 있을까?
신문 기사로 시작된 잡생각이 끊이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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