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사무실에서 조용히 쳐박혀 책을 읽고 있는데, 책상위에 올린 다리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착시려니 하고 책을 다시 보았지만, 그래도 뭔가 느낌이 있었다.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아주 조용히, 이유없는 의심에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그런데, 잠시 후, 다시 그 무언가가 움직이더니 닫힌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새앙쥐었다. 아주 작은. 닫힌 사무실 문 바닥 사이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작은. 그리고 조용한.
그 이후로는 사무실을 오고 가는데, 혹시 그 놈이 또 있을까 두렵고 설레인다. 그 새앙쥐가 날 잡아먹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그 놈을 봤을 때 느낄 놀라움에 대한 설레임이라고나 할까? 여름 학기라 조용한 사무실의 긴 복도를 걸을 때도, 사무실 문을 열 때도, 아침에 두고 간 점심 도시락을 체크할 때도, 이젠 모든 것이 일상스럽지 않아졌다. 무언가가 있다, 내 주변에. 쥐라서 더럽다거나, 공산당스럽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주변에 뭔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 탄력을 준다. 한시도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
내가 내 공간에 내가 허락하는 것만을 들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생각이 든다. 예전에 방충망이 없었을 때 날아들던 나방과 모기들. 그것을 피해서 치던 모기장들. 아니면, 안기동 지붕에 밤이면 소란스럽게 몰려다니던 쥐들. 마당 한구석에 무리들 지어있던 다마 벌레, 아니 콩벌레들. 그런 것들에게 금을 긋고 담을 치고 산 것이 아마 이제 내 본능이 되었나보다. 그래서 무언가 들어오니 설레이고. 그러고 보면, 파리도, 모기도 없는 청정구역에서 허락된 식구들만, 그리고 그들의 애완동물만, 식구로 허락된 생명들만이 모여사는 것이 지금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금 사는 집에는 파리들이 많다. 잡아도 잡아도 저녁에 가면 또 날아든다. 아마 집안 어딘가에 우리가 알지못하는 그들 만의 출입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저녁에 집에 가면 파리를 잡는 것이 일이고. 그런데, 이를 제일 못견디는 것은 어린나무이다. 파리를 무섭도록 싫어한다고 할까? 어두운 것도 무섭지만, 그 무서운 것을 무릅쓰고 파리채를 가지러 갈만큼 싫어한다. 그리고 캠핑을 가는 것도 싫어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밑에는 아마 인간이 만들지 않은 자연이 주는 불편함이 큰 것 같다. 평평하지 않은 바닥,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흙, 깨끗하지 않은 그릇… 사람이 만든 공간과 자연이 엮은 공간의 금을 넘어가기 싫은 까닭일 것이다. 거기에 옛 기억은 잊지만, 방충망 안에서 반 너머 살아온 부모가 다시 강화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문득, 이 큰 건물 안에 돌아다니고 있을 그 새앙쥐가 별로 싫지가 않다. 오히려 용감해서 나에게도 용기를 주는 것 같고, 낯설어서 처음하는 미팅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단대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신고를 할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운이 있어서 다시 만나도 좋고, 또 다른 사람들이 흘낏 보고 놀라도 좋고. 그냥 그렇게 두는 것이 스릴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