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우리가 자전거에 다시 몰입을 한 것은 한달 남짓이다. 그전에 내가 혼자 있을 때, 자전거로 학교를 오가기도 하고, 또 여기로 이사 온 뒤, 잠깐 타기도 했지만, 아이가 자전거를 타기 전까지는 시들했다.
그러다 지난 달 초, 중고로 나온 자전거를 아이에게 사 주고 난 뒤 세상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자전거 타는 것을 꺼리던 아이가 이젠 학교에 갈 때 자전거를 타는 것을 젤로 좋아한다. 비가 오는 날은 실망을 하고.
오늘 아침 같이 늦게 일어난 날에도 처음에는 잠 결에 차를 타고 가겠다고 하다가도 잠이 깨고 밥을 먹으면 언제나 자전거를 타고 가자고 나선다. 사실 늦으면 늦을 수로 자전거가 좋다. 그 시간 때에 학교에 차를 가지고 가면, 학교 앞에서 차가 막혀 이도저도 못하고 지각일 경우가 많지만, 자전거는 인도로도 가니까, 제일 빠르다. 참고로 여기서는 자전거 공유도로도 있지만, 아닌 곳에서는 인도로 가야한다. 특히 아이가 있을 때는. 그리고, 횡단보도에서는 내려야 하고. 전에 그러지 않았다가 큰일날 뻔 한 적이 있어서 더 조심이다.
아무튼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침은 참 상쾌하다. 아이 학교에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오는 가족이 하나 더 있는데, 이들은 엄마가 북구에서 왔다. 우리를 보면 언제나 반갑게 인사를 하고, 틈만나면 자전거 예찬이다. 세짼가 네째를 최근에 출산하고 특수 자전거(?) 갓난아이를 앞에 태우고 다니는 이 아줌마는 한편으로는 왜 미국사람들은 이렇게 좋은 곳에서 자전거를 타지 않느냐 입을 삐쭉거리기도 한다. 하긴 그들이 자전거를 타긴 하지만, 그건 언제나 주말에 자전거 정장으로 쭉 빼입고 타는 것이지, 이렇게 생활에서 보기는 힘들다. 어딜 가나 차로 다니지.
우리는 지난 주말에는 근처에 트레이더 조에 우유 한통을 사러 가면서, 모두 자전거에, 헬맷을 쓰고 같이 다녀오기도 했다. 물론, 주변의 좋은 자전거 도로로 자전거를 타고 가기도 하지만, 이렇게 주변에서 자전거를 타는 것도 좋다. 그게 그냥 나만을 위한 것 뿐 아니라 다른 뭔가도 하고 있다는 느낌때문일까?
덕분에 방학이 시작된 나는 아이를 데려다 주면서 하루에 1-20분은 자전거를 탄다. 건강해지는 것도 아이 덕분. 작은 것들이 조금씩 뭔가를 바꾸는 것이다.
내가 다니는 여기 BECA (방송과) 에서는 해마다 졸업식을 학교와는 따로 한다. 거의 30년된 전통인 것 같은데, 해마다 하면 할 수록 더 좋다.
내가 한 졸업식은 어땠나? 거기 녹지 캠퍼스에 있는 새로 지은 어디에서 한다고 해서, 2-30분은 걸어가야 할 것 같아서 졸업식은 아예 참석도 하질 않았다. 취직도 못해서 더 그랬겠지만, 그냥 열의 없이 학교로 가 아무런 의식도 없이 홍보관 앞에서 얼쩡거리다가 친구들과 대강 사진을 찍고 하릴없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가까운 고기집에서 갈비를 먹고, 그것이 땡.
내가 좋은 말을 해 주 선생도, 그 선생을 찾아갈 의지도, 기회도 없었다. 아마 그 때 우린 모두 각개격파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내게 졸업은 별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학생의 탈을 벗고 백수의 짐을 지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그걸 내색하지도 못했고, 또 그걸 이해하고 좋은 말을 건내줄 사람도 없었다. 물론, 졸업식장으로 갔다면 뭔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솔직히 별로 그럴 일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난 그 때 졸업사진이 어디에 있는지도 어떤지도 모른다. 그냥 찍고 잊어버렸으니까.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옥탑방의 백수생활. 오토바이가 같이 있어줘서 좋았다. 무섭지도 않고, 가깝기도 했고.
잊혀진 졸업.
오늘 여기서 한 졸업식은 대강 이랬다. 학생회에서 일단 건물 하나를 빌리고, 진행을 한다. 과에서는 전 교수들이 참석. 왠지 모르지만, 올해는 정말로 모두 참석했다. 그리고, 과에서 정한 시상식을 하고, 모든 교수들이 나가서 짧게는 1분, 길게는 5분정도의 스피치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 고리타분한 전형적인 설교는 아니다. 그래서는 여기서 살아남기 힘들다. 어떤 교수는 랩을 하기도 하고, 농담에, 코메디에 가까운 퍼포먼스도 하고. 일단 400명 가까운 청중들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 교수 모두가 이야기 하는 1시간 가량은. 오늘은 예의 “내가 왜 오늘 연설 준비를 못했냐하면, 프린터의 잉크가 나고, 차 사고 있었고…”하는 학생들의 변명을 모은 연설도 있었고, 또 공교육을 지원하라는 유세성 발언도 있었지만, 그래도 가장 인기가 있었던 것은 피날래를 장식한 가장 젊은 교수의 랩이었다. 아이폰에 음악을 가지고 플레이를 하고, 거기에다가 스스로 쓴 랩을 가지고 근 5분여를 우리과에서 일어나는 것들을 늘어놓는데, 모두 배를 잡고 웃고 즐겼다. 물론, 이런 연설에는 모두 조금의 교훈들은 들어있다, 그게 선생질의 본분이니까. 어려운 경기에도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라, 열심히 살아라 등등. 나도 페북 친구의 힘을 입어 이제 겨우 아침이라는 톤으로 이야기했고. 이게 끝나면 학생 하나하나의 이름이 불리고 하나씩 나와 졸업장을 받고, 교수들에게 와서 일일이 인사를 한다. 그리고는 예의 사각모를 하늘로 던지는 것으로 마감.
내가 여기에서 의미있다고 생각을 하는 것은 우선 거의 모든 졸업생이 여기에 참가를 하고, 교수들도 그런다는 것이다. 진짜로 공식적으로 이별을 한다. 그리고, 새로운 관계, 즉 졸업생과 옛 선생으로서의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고. 그리고, 가족들도 모두 일어나 자기 가족의 이름이 불리우는 것을 보고 환호하고. 나중에는 학과장이 이들을 모두 차례로 (자세히 설명을 하면, “어머니들, 모두 일어나세요. 다음은 아버지들. 조부모. 형제 …) 일어나게 해서 모두 박수를 함께 친다. 정말 진짜 학생들로 이어진 공동체가 된 것 같기도 하고, 이 한순간만은, 모두들 새로운 젊은이들 새출발을 목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이렇게 졸업식이 끝나고, 사진을 찍고 나면 한참은 허탈함에 빠진다. 또 한 클래스를 내보내는구나. 얼마동안 친해졌던 놈들인데, 이젠 보질 못하겠구나. 그런 생각들이 든다. 그리고 내가 선생이 된 것은 이런 순간들 때문이구나 하고 다시 느낀다.
그렇게 이 졸업식은 순간순간이 의미로 가득하다. 이런 것을 왜 난 내 20대에 하질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난 왜 그런 선생을 가지질 못했고, 왜 난 그런 스피치를 듣질 못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우리만의 졸업식을 가지는 것이 가능했을까? 그리고 좋은 선생님들을 모아서 좋은, 짧은!, 이야기를 한번 마지막으로 듣는 것이 가능했을까? 왜 내가 그런 것을 오거나이즈해보려 하질 않았을까?
여기에 답을 못하겠기에 난 내가 참가할 수 있는 졸업식을 최선을 다 하나보다. 가기 전 며칠을 무슨 말을 해 줄까 고민을 하고, 영어로 초본을 쓰고, 혼자서 늦은 밤에 읽어 보고, 가족 앞에서 다시 읽고. 아들이 영어를 고쳐 주고, 다시 연습하고. 내게 주어진 졸업식을 면접시험처럼 준비한다. 난 그게 내 학생들에, 이젠 옛 학생들이지만, 소중한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다시 한번 그들에게 좋은 하루가 되라고 빈다.
학교에서 데리고 올 때부터 조금 수상쩍었다. 플레이데이트 하고 싶다는 것을 못하게 했더니, “오늘은 정말 최악의 날이야”라고 울상을 하질 않나, 또 오는 차에서도 힘든 모양으로 창밖만 보고 있고. 그러더니 결국엔 집에서 엄마를 보더니 울고만다. 그것도 한참을 서럽게.
영문을 알지 못했지만, 이럴 때는 먹는게 최고다 싶어 일단 우동을 끓여 먹이고 차근히 물었다.
얘기인 즉슨, 오늘 담임 선생님이 어딜 가시고 대체 교사가 왔는데, 너무 mean 했다는 거다. 아이들이 떠든다고 벌로 단어 받아적기를 몇번을 더 시키고, 또 간식도 안주고… 결국에는 숙제도 벌로 더 줬나보다. 그래서 반 남자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인 Mrs. Cory가 내일도 단체로 결석을 하기로 했다는 둥, 내일 소풍도 안 갈꺼라는 둥, 핸드폰을 좀 빌려주면 아빠한테 전화해서 데리고 가게 하겠다는 둥…. 별별 이야기가 많았나 보다. 우동을 먹으면서도 우동발을 튀기면서 이야기하는데, 도저히 이 나이든 대체교사가 용서가 되지 않는지 분노를 삭히지 못했다.
세상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 밖에, “민주화 마~~~이 됐다”는 말밖에 나오질 않았다. 이 아빠세대가 어떻게 당하고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는데, 선생님이 고작 숙제 좀 더 내줬다고…
“아자씨! 좋은 세상에 삼니다요, 누구 덕분인지는 모르지만도.”
그래도 오늘 그 선생님 덕분에 담임이 얼마나 좋은 지 알았지 않냐고, 내일은 문제 없을 거라고 그러고는 도서관에도 다녀오고 하다보니 그만 잊어먹었는데, 밤늦게 코리 담임선생님이 전화를 했다. 아마 아이들이 울고불고, 학부모들이 전화를 하고 난리를 쳤나보다. 우리 어나는 괜찮냐고, 학교를 비워서 미안하다고 (미안할 일도 없는데) 그런다. 그러면서 내일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도나스를 한박스 사갈거라고 그러면서 전화를 끊는다. 아직도 10집도 더 남았다고.
전화를 끊고, 누구냐고 묻는 어나에게 단 이것만 던져주고 치우고 싶었다.
“정말 지랄같이 세상 잘 만났다!”
어나와 운동을 하러 갔다 온 것은 어제 늦은 오후였다. 가기 전에 배추 절인 것을 보고, 김치를 하고 있겠거니 (얼마만에 먹어보는 김치인가!), 생각을 하고 오는데, 부엌창으로 본 시나의 얼굴에 이상한 기미가 보인다. 화들짝 놀라 가까이가서 보니, 눈물이 절절 흐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어디 아픈 것은 아닌지, 그러면서도 저렇게 김치를 하고 있다니, 아니면 그냥 양파가 매워서인가? 별의별 생각이 문을 열고 부엌으로 가는 찰라에 스쳐갔다.
그런데!!!
막상 부엌에 가보니 시나는 아이패드를 통해서 오디오북을 듣고 있었고, 이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 그렇게 펑펑 울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에서 하는 오더블이란 사이트에서 공짜로 회원가입만 하면 주는 크레딧으로 두권의 책을 다운로드 받았는데, 그 중의 하나가 언제가 영화로도 본 적이 있는 Namesake 소설이다. 그 중에 어제 들은 것이 아버지가 혼자 죽는 장면인데, 그게 그렇게 슬펐던 모양이다. 하긴 나나 어나가 없어서 감정이입에 장애물이 사라졌으니 얼마나 좋았을까? 혼자 고고히 김치를 담그면서 인도인 아버지가 아메리카의 한 호텔방에서 혼자 죽고 자식들은 쓸쓸히 그걸 나중에서야 발견하고…
게다가 그런 스토리가 어쩌면 여기에 이민와서 쓸쓸히 살고 있는 우리 모습에 또 이입이 되니, 정말 금상첨와였을 것이다. 그러니 펑펑 울 수 밖에.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김치를 담그느라 눈물도 닦지 못하는 시나를 위해 손수건을 대령하는 것.
“당신은 울고 있나요~~”에 대한 나의 답은 “내가 줄 수 있는 건 오직 손수건 뿐.”
며칠 전에 자기 전에 어린나무에게 다니는 중국어학교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 선생님은 좋아?”
“어!”
“어때?”
“…”
한참은 있다가,
“어 나를 이찐짜오라고 불러.”
“좋아?”
“어~”
“힘들어?”
“…”
또 한참을 있다가,
“그럴 땐, 짬깸뽀를 해.”
워낙 느닷없어서,
“어?”
“어, 선생님이 힘든 거 하라고 하면, 션이랑 몰래 짬깸뽀를 해.”
“선생님이 몰라?”
“선생님이 따라 읽으라는 것을 읽으면서, 곁눈으로 둘이 해.”
“…”
누구나 어려운 시간을 살아남는 방법은 있는 것 같다.
어제 사무실에서 조용히 쳐박혀 책을 읽고 있는데, 책상위에 올린 다리 너머로 무언가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냥 착시려니 하고 책을 다시 보았지만, 그래도 뭔가 느낌이 있었다. 설레임으로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하고, 아주 조용히, 이유없는 의심에 자신이 우습기도 하고. 그런데, 잠시 후, 다시 그 무언가가 움직이더니 닫힌 문틈으로 빠져나갔다. 새앙쥐었다. 아주 작은. 닫힌 사무실 문 바닥 사이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작은. 그리고 조용한.
그 이후로는 사무실을 오고 가는데, 혹시 그 놈이 또 있을까 두렵고 설레인다. 그 새앙쥐가 날 잡아먹기야 하겠냐만, 그래도 그 놈을 봤을 때 느낄 놀라움에 대한 설레임이라고나 할까? 여름 학기라 조용한 사무실의 긴 복도를 걸을 때도, 사무실 문을 열 때도, 아침에 두고 간 점심 도시락을 체크할 때도, 이젠 모든 것이 일상스럽지 않아졌다. 무언가가 있다, 내 주변에. 쥐라서 더럽다거나, 공산당스럽다거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내 주변에 뭔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 탄력을 준다. 한시도 여유를 가지지 못하게 한다.
내가 내 공간에 내가 허락하는 것만을 들일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생각이 든다. 예전에 방충망이 없었을 때 날아들던 나방과 모기들. 그것을 피해서 치던 모기장들. 아니면, 안기동 지붕에 밤이면 소란스럽게 몰려다니던 쥐들. 마당 한구석에 무리들 지어있던 다마 벌레, 아니 콩벌레들. 그런 것들에게 금을 긋고 담을 치고 산 것이 아마 이제 내 본능이 되었나보다. 그래서 무언가 들어오니 설레이고. 그러고 보면, 파리도, 모기도 없는 청정구역에서 허락된 식구들만, 그리고 그들의 애완동물만, 식구로 허락된 생명들만이 모여사는 것이 지금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지금 사는 집에는 파리들이 많다. 잡아도 잡아도 저녁에 가면 또 날아든다. 아마 집안 어딘가에 우리가 알지못하는 그들 만의 출입구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저녁에 집에 가면 파리를 잡는 것이 일이고. 그런데, 이를 제일 못견디는 것은 어린나무이다. 파리를 무섭도록 싫어한다고 할까? 어두운 것도 무섭지만, 그 무서운 것을 무릅쓰고 파리채를 가지러 갈만큼 싫어한다. 그리고 캠핑을 가는 것도 싫어한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그 밑에는 아마 인간이 만들지 않은 자연이 주는 불편함이 큰 것 같다. 평평하지 않은 바닥,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흙, 깨끗하지 않은 그릇… 사람이 만든 공간과 자연이 엮은 공간의 금을 넘어가기 싫은 까닭일 것이다. 거기에 옛 기억은 잊지만, 방충망 안에서 반 너머 살아온 부모가 다시 강화하는 것도 있을 것이고.
문득, 이 큰 건물 안에 돌아다니고 있을 그 새앙쥐가 별로 싫지가 않다. 오히려 용감해서 나에게도 용기를 주는 것 같고, 낯설어서 처음하는 미팅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단대 사무실에 전화를 해서 신고를 할려고 하다가 그만 두었다. 운이 있어서 다시 만나도 좋고, 또 다른 사람들이 흘낏 보고 놀라도 좋고. 그냥 그렇게 두는 것이 스릴이 있다.
어린나무가 피곤했나 보다, 어제는. 잠자리에 들자마자 잠이 드는 듯 해, 조용히 물었다.
“아빠 잠깐 나가서 일 좀 하고 와도 돼?”
순순히 응낙하는 어나를 보고 방을 나왔다가, 다시 자러 들어간 건 1시쯤. 나는 조용히 누웠다. 그런데 갑자기, 어나가 낄낄거리며 웃기 시작한다. 한참을 웃길래, 잠이 깼나했더니, 아직도 꿈 속에 있다.
“무슨 꿈이야?”
잠에서 슬그머니 깬 어나가,
“어, 비치볼이 차 선루프로 들어갔어.”
그러더니, 한참을 낄낄 웃더니, 다시 잠이 들었다. 그러더니 한참을 계속해서 웃고 자고를 거듭한다.
나는 자면서 생각을 한다. 자면서도 즐거울 수 있는 어린나무가 너무 부럽고, 감사하다.
그러고 잤는데, 갑자기 어린나무가 소리를 지르고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시계를 보니, 5시 반. 난 왜 그런지 안다.
“가서 오줌 누고 와!”
꿈에서, 잠에서 나오기 싫은 어나는 오줌마려운 것이 짜증이 난 것이다. 난 그냥 그렇고 그런 꿈에서 막 깨어났는데 말이다. 그래서 또 어나가 부럽다. 꿈을 즐길 수 있는 어나가.
한국에서 돌아 온 직 후, 어린나무의 스케줄은 온통 DSi와 Warriors였다. 전자는 물론 게임이고, 후자는 한국에서 교본가 어딘가에 가서 산 영어 소설인데, 6권짜리 시리즈만 지금까지 4번이 나온 아이들이 읽는 책이다. 캠프에 갔다와서는 바로 게임을 30분, 혹은 시작한 것이 끝날 때까지 하고, 그 다음에는 바로 책으로 가서, 거의 이삼일 만에 책을 한권씩 비워냈다. 한 권에 6-7불 하는 것들이라 이책을 사대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 그리고 게임도 그 작은 DS의 화면을 보고 하는 것이 마땅치 않아서 이래저래 이 두가지를 어떻게 해결하나 고민을 하고 있었다.
일단은 DS를 해결하기로 하고, 어느 날 오후 캠프에서 돌아와서 어린나무에게 물었다.
“어나야, 우리 오랜 만에 wii 한판 할까?”
돌아오자마자 할 DS의 게임 스케줄이 잘 정리되었있던 차에 내가 끼어든 것이 반갑지 않은 어나는
“어, 오늘은 이거 하고, 내일 같이 하면 안돼?”
그러기로 하고 다음날 wii를 하고 새로 나온 Wii Sports Resort까지 우연찮게 사서 같이 하기 시작한 것이 이제는 일주일 내내 Wii만 하고 있다. 같은 게임이 뭐 다를까 하겠지만, 일단은 아빠와 같이 하는 것이고, 화면이 크고, 또 움직이면서 한다는 것이 다른 점. 처음에 게임을 사주기로 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이제 다른 것은 예전에는 같이 하면 내가 거의 이겼는데, 이제는 어나가 이기는 게임도 많아졌다는 것. 어린나무는 아빠를 이기는 데 익숙해지고, 나도 지는 데 고마와하는 마음을 가질려고 해야겠다. 물론, 열 받아서 한판 더 붙고 싶지만.
그 다음 문제는, 그 책 Warriors. 책을 읽는 것은 좋은데, 이 판타지 소설에 무지 빠지는 것이 그리 마땅치 않아서 이리저리 꼬시는데 지난 주를 보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소설을 들고는, 캠프로 가는 차에서도, 돌아오는 차에서도, 밥먹고도 온통 그 책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해리포터 오디오북이 있냐고 묻는다. 예전에 있던 것을 지웠는데, 갑자기 듣고 싶단다. 작년 여름에도 이즈음에 무지 들었었는데, 그 생각이 났나? 아무튼 좋다 싶어서 도서관에 가자고 꼬셨다. 그래서 간 도서관에서 오디오 시디들을 빌리고, 그와 함께 Bones라는 만화책도 빌리고, 또 다른 내가 추천하는 책도 빌리고. 그래서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엠피3로 해리포터를 듣고, 그 다음에는 만화책을 보고 한다. 오늘 아침에는 문득 “해리포터를 들으니까 영화도 보고 싶어지네” 한다. 그 덕분에 warriors의 읽는 속도도 줄었고.
하여간 잘 조절하면서 살아야겠다.
PS: 이제 개학을 곧 하는데 이렇게 공부를 하지 않고 놀려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아이가 크니 이런 걱정도 하게 되나 본데…
누가 짬짜인 지 아는 사람은 다 안다. 내가 결혼해서 10년을 살면서 식당에 가서 부부가 같은 것을 시켜본 적이 없다. 언제나 다양한 것을, 이것저것 먹어보아야한다는 것이 지론인 마나님을 둔 지라 내가 짜장이면, 자기는 짬뽕. 뭐 그런 식이다. 그런데, 더 가공할 것은 그것이 대를 이어 전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째 먹는 것으로 신경전을 하고 있는 터라 오늘은 어나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저녁으로 먹기로 했다. 마침 냉장고에 토마토 소스와 크림 소스, 두가지가 조금씩 있는 지라, 나는 토마토 소스를 먹고, 어나에게는 자기가 좋아하는 크림 소스를 주기로 마음을 먹었다. 스파게티라고 쉽게 생각되지만, 그게 두가지 소스에 마늘빵까지 더해지면 말처럼 쉽지가 않다. 어쨌든 학교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이렇게 세가지를 해서 먹는데, 일단 어린나무 것이 먼저 되어서 테이블에 올렸다. 먼저 먹으라고 하곤 마늘빵과 토마토 스파게티 순으로 접시를 가지고 나갔더니, 나의 접시를 물끄러미 보던 어린나무가 하는 말.
“아빠, 나 그것 좀 먹으면 안 돼?”
난 크림 스파게티가 싫은 줄 알고,
“어, 이것 먹을래?”
“아니, 작은 접시에 좀 덜어 줘.”
요즘 좀 날카로운 관계를 지나쳐보기가 힘들었을텐데, 그래도 먹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보다.
맙소사, 그러더니 내가 먹던 것을 다 먹고, 결국은 크림 스파게티는 남겼다.
짬짜의 아들, 토크 도령의 8살 이야기이다.
저녁을 먹자마자 잠이 온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간 어나.
아침에 눈을 뜨니 어느덧 내 옆에 누워서 귀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시계를 보니 5:30.
그래도 그저께 기록한 2:30보다는 좋아졌다.
잠시 후, 내가 정신을 차리자 하는 말.
“어제 내가 바로 잤잖아.”
“어.”
“저녁을 안 먹고 잔 것 같아.”
“저녁은 짜장을 먹었잖아!”
“그건 점심이지.”
“점심은 캠프에서 먹었잖아.”
“아~ 그렇구나.”
“그런데, 왜 배가 고프지?”
결국은 아침을 달라는 소리였다.
어나의 배나 잠은 아직도 시차적응을 하고 있는 것일까?
후문으로 들리는 바에 의하면, 자기가 배가 고파서 못참은 어나는 아빠가 어정거리는 사이에 스스로 시리얼 꺼내고, 스스로 간택한 아몬드밀크를 꺼내서 아침을 급하게 해결하려다, 같이 먹자고 호령을 하는 아빠에게 걸렸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