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rch, 2009

어린나무가 말했다

Wednesday, March 18th, 2009

하나.  “엄마, 엄마는 아는 게 참 많은데, 게임은 참 못해…”

유분투의 새 게임들을 하면서 절절매는 시원한 나무에게 어린나무가 한 말이다. 너른나무가 옆에서 그의 언어로 이렇게 바꿔 주었다.
“한마디로, 엄마는 말만 엄청 잘한다는게지…”

둘. “선생님이 뭐랬는지 알아? 엄마가 SUPER래…”

집에 온 어린나무가 전해준 말에 으쓱해진 시원한 나무, 저녁에 퇴근한 아빠 앞에서 우쭐대며 말했다.
“어린나무, 앤더슨 선생님이 뭐라고 했다구? 다시한번 말해봐봐!”
…모종의 머뭇거림과 정적이 흐른 후…
“으음~ 선생님이 엄마랑 아빠가 다  SUPER랬어.”
“뭣? 아까는 엄마만 수퍼라고 했쟎아?”
시원한 나무의 유치한 다그침에 아이가 말했다.
“기억이 안나……”
우씨~ 이 아이는 지나치게 사교적이란 말이다.

셋. 친구와 전화를 하다가 한국의 수학공부 싸이트에 대한 정보를 듣고 솔깃해진 시원한 나무가 어린나무를 앉혀놓고 실습시작. 친구에게 배운대로 “가르기”의 개념을 가르쳐 주기로 했다.

“어린나무, 9가 있어. 근데 9를 만들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엄마라면 5와 4를 합쳐서 만들테야. 너라면?” 어린나무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
“나는 3과 6을 더해서 만들래!”
눈빛이 점점 초롱초롱해지면서 9만들기는 계속된다.
“아, 또 있어. 100에서 91을 빼는 거야” ???!!!
앗, 본연의 교육목표로부터의 이탈이다 .
“아, 그러네…그것도 좋은 방법이지만, 엄마 말은……”
시원한 나무, 어떻게든 제 학습궤도로의 복귀를 꿰해보지만, 이 아이의 창조적인 9만들기는 이제 걷잡을 수 없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이건 어때? 3하고 3을 곱하는 거야. 음, 또 있네. 1하고 9를 곱해도 돼. 그리고 아, 0을 9하고 더해도 되네…그리고~~~!?!?!”

이리하여, 처음으로 시작한 ‘가르기’라는 개념익히기는 그대로 물건너가버렸다…

넷. 한달여전 아이를 픽업하는데 선생님이 물었다. 어린나무가 만든 책을 보았는냐구? 사연인 즉슨, 어린나무가 발렌타인 데이를 맞이하여 나의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책을 만들었는데, 이렇게 써놓았다.

엄마: 나를 위해 장난감을 사주시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신다. 엄마가 너무 좋다.
아빠: 맨날 나랑 놀기만 한다. Wii도 하고 테니스도 치고, 아빠를 사랑한다.
할아버지: 나에게 한글책을 잔뜩 사다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다.
할머니: 할머니는 아빠를 꼼짝 못하게 해 내가 텔레비를 볼 수 있게 해준다
. **앤더슨 선생님이 포복절도했던 대목이란다 :)

쉽게 말하면 엄마는 맨날 쇼핑만하는 부엌데기고, 아빠는 할랑할랑 아이랑 노는 한량이고, 할머니는 아들을 쥐고 흔드는 권력자다. 참으로 리얼리스틱한 글쓰기가 아닐 수 없다. 다음엔 어떤 모습으로 아이의 책에 등장할지 모골이 송연해진다…잘 살아야겠다^^

아이 가 커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제야 조금씩 예전에 선배언니가 해주었던 말을 실감한다. “언니, 아이가 언제 제일 이뻤어요?” 어린나무가 태어나고 걷고 할 무렵에 난 이보다 아이가 더 이쁜 순간이 있을까해서 물었었다. 언니가 대답했다. “바로 지금! 아이가 어릴 때는 어려서 너무 예뻤는데, 크면서 함께 사는 날이 느는만큼 더 이뻐지는 것 같아. 아이랑도 자꾸자꾸 정이 드는가봐…”

그렇 게 우리는 정이 들고 있다. 이제는 정이 들어들어, 아이가 엄마노릇을 하려고 들기도 한다. 아침에 좀처럼 일어나지 못하는 엄마를 아이는 아침이 되면 달려와 깨우곤 한다. 갖은 협박과 회유를 다 일삼던 아이가 그제는 내 몽롱한 머리를 제 무릅에 올리더니, 이렇게 얼르는 것이었다.
“까르르르르 까꿍~! 까르르르~까꿍! “
@@
너른 나무가 어린나무를 깨울때, 밥투정을 할때, 어린양을 부릴 때면 늘상 하는 말이 바로 이 까르르르 까꿍이 아니였던가…
“우리 어린나무가 다시 아가가 되었네. 어디 보자. 우리 아가. 까르르르르 까꿍~ 까르르르르 까꿍~”

최면

Tuesday, March 17th, 2009

집에 왔다. 샤워를 하니 산뜻하다. 산뜻하게 다시 시작하는 거다. 단지 오늘밤 잠을 조금만 덜 자면 된다. 4시간 걸렸던 거 다시 쓰면 까짓 많아도 4시간 걸리는 거다. 어차피 다시 써야 할 파트였다. 그냥 다시 한번 리바이즈 하는 거나 마찬가지다. 생각해보면 얼마나 다행이냐. 몇달간 작업한 데이타를 잃은 것도 아니고 내일 아침에 당장 보내야 할 페이퍼를 송두리채 잃은 것도 아니란 말이다. 기껏 두바닥 반, 네시간을 잃어버린 거다. 이참에 내 작업 습관을 바꿀 수 있으니 그도 얼마나 다행이냐. 일어나 화장실 한번 갈 때마다, 물 뜨러 갈 때마다 저장 버튼 한번씩 눌러주는 취미한번 키워보는 거다. 기나긴 논문 쓰다 이런 일 있었으면 졸업도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모든 것이 다행이다.

다만, 썼던 부분을 되살려 그것에 맴돌며 쓰지 말자. 그냥 처음부터 말짱 처음부터 ‘곱씹지 않고’ 쓰는 거다. 이건 근성의 문제다. 오늘밤안에 두바닥 다시 쓰고, 그리고 다음 챕터 첫파트 쓴다. 그래도 시간이 남으면 조금 자기로 하자. 근성의 문제다. 잊지 마라…

이렇게 내가 나에게 말했다.

지금 이 순간

Tuesday, March 17th, 2009

누군가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하기 싫은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썼던 페이퍼를 다시 쓰기라고 대답하겠다.
지금 그 제일 싫은 일을 하고 있다.
토가 나올 것 같다.
오후 내내 쓴 두장 반, 피 같은 두장 반을 잃었다.
속이 얼얼하고 토가 나올 것 같다…

“일찍”

Thursday, March 12th, 2009

모처럼 일찍 아이가 학교에 갔다. 우리집은 학교에서 3분 거리, 하지만 아침은 멀리 있는 그 어느집보다 바쁘다. 길고 긴 아침식사의 터널을 건너서 차를 타면 어김없이 8시 11분, 학교에 도착하면 14분, 1분을 달려야 아침조회를 하는 운동장에 당도하는 빡빡한 일상의 연속이었다.
아이가 빨리 빨리를 벗어나 일찍이 느긋히 사는 삶의 즐거움을 알 수 있도록
생활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한지는 벌써 여러날이나, 언제나 그렇듯 실천은 어려웠다.

그런데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오늘 어린 나무는 눈을 뜨자마자 옷을 입고 학교에 갈 준비를 서두르더니, 밥도 한그릇 뚝딱, 그리하여 8시 6분 차에 타는 쾌거를 이루었다. 차를 타자 마자부터, 이 아이는 자신이 8시 9분에 학교에 도착하면 언제나 1등으로 학교에 오는 제이든보다 더 빨리 갈 수 있을지 모른다며 기대에 부풀었다. 잠시후 학교에 도착할 무렵, 아이가 소리쳤다. 오우마이갓! 티모시, 티모시가 있었군…티모시가 가끔씩 제이든보다 일찍 올 때도 있었는데, 티모시를 미처 생각하지 못했네…하고 말했다… 마치 이 아이는 언제나 자신이 그들의 가당키나 한 경쟁자였던 마냥 혼자서 다른 잠재적 라이벌들의 행보까지 점치면서, 평소보다 6분이나 일찍 학교에 당도했다. 그리고는 뛰기 시작했다. 평소, 아슬아슬 15분 정각에 도착했을 때, “뛰어라, 어린나무, 뛰어!”하는 지 에미의 간절한 부르짖음에는 갈짓자걸음으로 화답하던 녀석이, 뛰기 시작했다.
저멀리 아이가 뛰어가는 모습이 상쾌해 보였다. 아이가 뛰어가는 저 너머 운동장에 아이들은 간데없고 책가방들만 쪼로록 놓인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는 그 가방들 뒤에 홀로 우뚝 서서 외쳤다. “엄마, 나 7등이야!” 그리고는 꼼짝도 않고 철옹성처럼 홀로 서서 아무도 넘보지 않는 7등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일찍”이란 이렇게 하루의 시작을 설레이게 띄워주는 마술같은 힘이 있었다. 그래서 다짐했다. 내일은 조금 더 일찍 8시 7분에, 그 다음날엔 8시 5분에, 그 다음 다음날에 8시 3분에, 그리고 2분에..조금만 더 일찍 학교에 가고 하루를 시작하자. 일수표 찍듯이, “조금 더 일찍” 시작하는 즐거움과 설레임으로 하루하루를 찍어가자…이렇게 다짐했다.

실은 일수표가 하나 생기긴 생겼다. 어제부터 지메일의 테스크 기능을 쓰기 시작했는데, 오오오~ 이게 물건이다. 일찍 시작해 일찍 끝내는 재미, 업무완수!하며 한 줄 찍~ 긋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오늘 아침,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일수장이 미완의 어제를 사정 안가리고 팍팍~ 보여주고 있다. 마음은 다시 조바심을 치기 시작하고, 페이퍼로 일찍이 돌아가는 편이 낫겠다. 휘리릭~

3월이

Tuesday, March 10th, 2009

바람처럼 가고 있다.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그저 휙 지나가
그 바람에 코가 베일 지경이다.
채 3시간을 못자고 눈을 떴는데, 이게 왠일인가.
졸립지도 않다.
위기를 맞아 몸이 씩씩해지고 있다…기특하다.

오늘 할일:
1. 이론 첫번째 파트 끝내기
2. 프로젝트 두번째 파트 시작하기
3. 이사관련 예약 마무리하기

올 것이 왔다

Tuesday, March 10th, 2009

새 프로젝트가 곧 시작될 것이라는 메일을 받았다.
무슨 신통술인지 일이 시작될 것 같아서 요며칠 좌불안석이었다.
데이타 구조분석을 하고 있겠다는 답메일을 쓰면서,
차라리 마음이 편해진다.
이제, 어쩔테냐?
또다른 국면이다.
이미 예견되었지만 위태로운 국면임에는 분명하다.

진단결과

Wednesday, March 4th, 2009

“너무 졸려요”
“심하게 졸아요”
“아무 때나 깜빡깜빡 자요”
“잠으로 인한 집중력 장애”
“순식간에 잠들었다 깨는 증상…”

오죽하면, 지식검색에 물어봤다.
극심한 표현력의 한계를 느끼며 이렇게 저렇게 물어 봤는데,
결과가 참담하다.
뭐라 물어도 답은 ‘잠병’이란다.
게다가 나의 잠병은 만성질환에 가깝다.

또한 지식인들께서 말씀하시길,
‘이 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병’이라고 한다.

그제서야 눈이 좀 번쩍 떠지는 기분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늘어지는 하품사이로 연신 시야가 흐려오고 있으니,
치료가 어려운 병은 병인듯 하다.

하, 눈물이 민망한 하루다…

피아노는 무겁다

Wednesday, March 4th, 2009

아침부터 분위기 있게스리 비가 오신다. 그리고 나는 분위기를 깨며 사정없이 졸아주셨다.

일주일간 풀렸던 몸을 이끌고 페이퍼의 세계로 돌아오니 매우 피곤하다. 그동안, 이주일치의 빨래를 해치웠고 먹고 싶던 음식을 원없이 해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집의 숙원사업이던 어린나무의 피아노장만 프로젝트를 달성했다. 처음에는 공짜 피아노를 넘보다가, 어느새 머리꼭대기까지 높아진 눈으로 새 피아노까지…구경 한번 잘 했다. 불황 극복 500불 대할인 프로모션을 끼고도 30년된 야마하 중고를 사려면 택스빼고 3000불이 든다고 했다. 에라이, 어차피 비싼놈, 때깔 좋은 새걸로 구경이라도 해보자하는 심산으로 새피아노 대리점을 호기롭게 둘러보기도 했다. 세전 6000불이였다.  결국, 우리는 6000불짜리 쌔삐도, 3500불짜리 30년산 피아노도 아닌, 나와 동갑의 앤틱 피아노를 1천몇백불에 사는 걸로 결론을 보았다.

어둑어둑한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빨간 노을이 이글이글 타는 101번 도로 위에서, 피아노가 참으로 무거운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딱 30여년전, 빤딱거리는 내 까만 피아노가 이렇게 무거운 녀석이었다는 걸, 내 새끼의 피아노를 들었다 놓으면서 비로소 알게된다. 그 육중한 무게에 내 부모님의 허리는 얼마나 휘청거렸을까…내 등짝이 무거워져서야 알게 된다.

뭐랄까, 아연한 느낌이었다. 아이 셋을 둔 내 친구는 얼마전 이렇게 말했다. 빨리 늙고 싶다고… 빨리빨리 늙어 육십 쯤 되면 이 뻐근한 무게감, 이 묵직한 부채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아, 그래도 아직 나는 빨리 늙고 싶지 않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늙고 늙어,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고 싶다. 가끔 피아노처럼 무거운 넘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다 해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쌔삐도 좋지만 앤틱도 좋은거다. 나한테 맞는 놈으로다가 골라, 잠깐 낑낑대고 가다보면 그도 또 지나가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