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의 늪을 벗어나야 할 때…
Wednesday, September 27th, 2006수업시간에 나는 대체로 과묵하다.
원래 평소의 품성이 과묵함과 동떨어진 나는
그러나 수업시간에는 언제나 과묵한 과에 속한다.
이번학기에는 Social Welfare History와 Philosophy를 듣고 있는데
일단은 재미있다.
그리고 요리조리 돌려보고 곰곰히 되씹어 생각할 수 있게끔 하는 수업이다.
아직까지도 겨우 따라가지만 그래도 참 재미있다.
어제는 수업시간에 그룹프로젝트로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복지의 가치와 정신을 바탕으로
최저 생계비 보장을 위한 사회복지 정책의 guilding principles을 만드는 작업을 했다.
우리팀의 제니퍼는 수십년간 복지 정책 연 구, 평가로 잔뼈가 굵은
보수주의적 성향이 강한 리서처이고
다른 한 친구는 이상주의적 지향과 열정(?)이 약간 들떠보이는 줄리,
그리고 스스로를 비관주의자로 일컫는 다소 냉소적인 이민 2세대 미국인 린,
그리고 나를 포함한 한국인 학생이 둘이었다.
우리는 현재의 서비스의 틀을 새롭게 해체하기로 하고
기존의 TANF, Food Stamp, 그리고 W2를 통합한 그랜트제를 도입했다.
수급자격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일정한 소득이하의 모든 사람들로 확대시켰고
서비스는 무조건 cash지급을 원칙으로
슬라이딩 스케일을 적용, 더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이 과정에서 제니퍼는 우리의 구상이
너무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인 것이라고 불안해했고
그렇게 계속된 논쟁의 핵심은
현금으로 지급되는 정부보조금을 사람들이 제대로 사용하지 않고
술이나 마약, 등등으로 남용하는 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사실 이부분에 대한 나의 생각은 어느정도 정리가 된 터라
과묵한 나는 내 생각을 이야기했다.
우리들의 전제가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들에 대한 신뢰다.
세네살먹은 어린 아이들이 아닌 한,
- 아니, 네살먹은 우리 아이의 판단이 훨씬 명료하고 현명할 때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판단을 할 수 있고,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조절할 줄 안다는 믿음이
모든 사회복지정책과 실천의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나는 믿는다.
열에 한둘에 지나지 않는 오용자들의 문제는
추가적인 사회복지비용으로 고려하면 된다.
우리팀은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우리의 진보적인 프로포잘을 구체화시켰다.
그런데, 논의 도중 내내 나는 Charles Murray를 생각하고 있었다.
우리의 구상은 그가 그의 새책 In Our Hand에서 제안한 새로운 복지제도와
매우 닮아있다는 점 때문이다.
물론 Murray의 안은 수급연령을 21세 이상으로 제안하고
의료보험을 제외한 다른 모든 복지제도의 폐지를 전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디자인과는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나는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논객, 반복지논객으로서의 Murray를 알고 있을 뿐
왜 그의 안이 그처럼 많은 논쟁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지,
사회주의 학자 Erik Wright은 어떤관점에서 그의 입장에 동의하고 나섰는지,
그리고 Murray의 변신은 미국 사회복지의 어떤 흐름을 또한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내자신의 구체적인 이해가 없음을 깨달았다.
언제나 바쁜 학기와 쫒기는 데드라인의 와중에서
정말 내 공부를 하지 못하고 그저 뒤꽁무니만 쫓아오고 있었다는
부끄러운 자괴감이 들었다.
그러니까 나의 과묵의 진정한 원인은
비단, 몇년을 살아도 그닥 늘지 않는 영어의 문제가 아니다.
비판의식없는 책읽기, 정리되지 못한 생각, 문제의식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부러져 내 혀를 딱딱하게 굳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박사과정에서 살아남고
나중에 혼자하는 공부를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더 이상 과묵해서는 안된다.
모르는 것들에 대해 나를 열고
혼돈의 상태로 내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것들에 대해
부지런한 손과 눈, 머리와 입으로 대답해야 하는 것이다.
어제 수업이 끝난다음 제니퍼가 보낸 이메일에는
놀랍게도 Murray와 Wright의 글이 각각 링크되어 있었다.
모르겠다.
어쩌면 그녀도 자기머리로 기억되지 못하고 자기말로 표현되지 못하는 한계를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그리하여, 자기 책장과 디스켓을 뒤적거리며 무엇이 그들의 핵심적인 논점인지
찾아보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그녀의 신속하고 부지런한 손놀림의 결과 받아든 이메일을 보면서,
아, 나도 이제는 이 과묵의 늪을 벗어나야 할 때가 왔구나…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부지런히 그녀에게 답메일을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