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May, 2006

보이지 않는 그들…

Tuesday, May 2nd, 2006

이번주 목요일 학생들이 치를 기말 시험 문제중 하나다.

List 5 expansions to the Social Security program that occurred from 1939 through 1965, in their order of occurrence. You need not include dates, but one of the points will be for placing the expansions in the correct order (from earliest to latest).

사실 이렇게 웹에 띄우는 것은 위험하지만,
누가 보겠는가 하는 방심과 보면 어쩔테냐 하는 무심이 어우러져
문제를 유출했다.

사실, 이번학기 수업조교로서의 삶은 매우 우울한 삶이었다고 할 수 있다.
3번의 시험, 3번의 돌발 퀴즈, 2번의 짧은 페이퍼로 이어지는 빡빡한 일정때문에
토론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수업은 엄두도 못내고
매시간 수업리뷰와 시험 준비에 헥헥대며 여기까지 왔다.

교수가 보내준 문제 초안을 보며 들었던 생각
1) 아이들이 달달 외워야겠구나.
일테면, 모든 중요한 입법과 프로그램들은 입법자가 누구인가,
그들의 생애와 그들의 주장 중심으로 이해되어져야 한다.

2) 애들이 엄청 열받겠구나.
의사전달능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우리 교수는
딱 첫번째 수업을 끝내고 200명의 아이들을 단숨에 잡았다.
두번째 주차부터 그 누구도 손을 들어 질문하지 않았다.
그러나, 시험 문제는, 미국의 social security가 몇년에 무슨 서비스가 추가되었는지를
외워야할 정도로 너무 디테일하다. 그러나 무의미하다.

3) 애들이 포기하겠구나.
이해하기를 포기하고 그들은 외울 것이다.
이 대학 1,2년의 어린 아이들은 GI Bill이 무언지도 모르는데
걔들은 GI Bill이 서비스를 전제로 한 일종의 사회보장 제도였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포기하고, 그들은 외운다.

4) 애들이 사회복지정책에 치를 떨겠구나…
영웅과, 엘리트들이 난무하는 수업, 그곳 어디에도,
힘없이 사회언저리에서 묵묵히 일하면서 사는 대다수의 그들의 이야기는 없었다.
그들은 보수논객의 입방아에 오르면, 썩어빠진 복지병 중독자가 되고
진보논객들에게는 복지수혜를 받을 권리를 받은 집단,
이래저래 대상화의 대상일뿐이다.

아니, 빈곤과의 전쟁을 주관했던 존슨정부의 Office of Economic Opportunity의 첫 director가
누구였는지가 왜 중요하단 말인가? 이번 시험문제 중 하나다.
정답을 알고 싶으신가?
Sargent Shiver, 캘리포니아 주지사가된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장인어른 되시겠다.

마지막으로, 이 수업을 마감하며 느끼는 생각은 제대로된 ‘지’의 중요성이다.
무지와 몽매는 그 자체로 사람을 보수화할 수 있지만,
제대로 된 관점이 빠진 앎은 그냥 허접쓰레기와 같다고 한다면,
너무 심한 말인가…

불확실성에 대한 공포…

Tuesday, May 2nd, 2006

너른 나무랑 통화를 했다.
너른 나무가 이렇게 말했다.
"아니, 대체 무얼 그리 걱정을 하느냐고? 모든 게 정상이고 모든 과정이 잘 진행되고 있는데…
걔네들이 그러더라…"

아마도, 너른나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이렇게 넌즈시
학교 인터내셔날 담당자의 입을 빌어 했을런지도 모른다.
아닌게 아니라,
지난 주말, 미국에 있는 아줌마들의 네트웤에서 시원한 나무는
"취업비자 승인서를 받아쥐기전에 출국은 위험"이라는
청천벽력과 같은 리플을 읽었고 (우리는 10여일후 출국 예정이다)
그로인해, 너른나무에게 학교담당자에게 확약을 받으라고
‘살며시’ 채근을 한 바 있다.

들어오기도 살기도 까탈스러운 나라에 사는 탓으로 돌리긴 했지만
이 밑도 끝도 없는 불안증은 무엇에 기인하는가…
약자로서, 소수자로서 사는 강박은
이 나라를 떠나면 해방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변해야만 해방될 수 있는가.
알고 보면 사는 것이 불확실성 그자체이건대
대체 무얼 그리 안달한단 말인가…

What is next?

Tuesday, May 2nd, 2006

오늘 두시간의 수업을 마치면서 내게 물은 말이다.
늘상 월요일, 수요일이 그렇듯 점심을 건너뛰었다.
월요일 섹션은 오늘이 이번학기 마지막 수업이었는데,
이번주에 있는 시험준비 때문에 싱겁게 끝났다.

전쟁같은 수업을 끝내니 머리가 깨질 듯 아파왔다.
새벽부터 수업 직전까지 리뷰 준비를 하면서
지난 주말 내내 놀렸던 머리를
갑자기 무리하게 돌린 탓인지도 모른다.
이유를 모를 헛헛함 때문에, 한참 Crash에 빠져 있는 너른 나무에게 전화를 해서
의미없는 말들을 했다.

그리고 여기는 도서관이다.
다음 해야 할 일은?

숙제다.
내일아침 8시까지 내야 하는 파이날 페이퍼 작업을 해야 한다.
또 막판 초치기이다.
그리고 마지막 시험 하나를 빼면, 이것이 이번 학기 마지막 글쓰기가 될 것이다.
이래저래 쓸거리를 재보면서 빵을 두조각쯤 넘겼다.
그런데, 아프던 머리가 씻은듯 하고 세상이 좀더 낙관되고 있다.
이제 나의 이런 증상은 놀랍지도 않다 ^^;;
결국, 무어라 해도 사는 문제의 핵심은 "먹"는데 있다는 그 단순한 깨달음을
나의 몸이 오늘도 거듭 말해주고 있다.

오늘 써야 하는 글의 주제는 이러한 단순함과는 겉으로 볼 땐, 거리가 좀 있다.

1) Is good policy analysis "objective"? What characterizes analysis that is or is not objective? Given this definition, is it possible, and is it desirable, for policy analysis to be objective?

2) Is policy-relevant research necessarily conservative, in the sense that it is constrained by "prevailing political attitudes"? In particular, do you agree that policy-relevant research needs to be constrained to consider politically feasible alternatives? If so, should this research take place in contract research firms (Loury’s implication) and/or government agencies, and/or does it also have a role within academic research?

3) In some of our readings and discussions the argument has been made that concepts of race, gender and class are rarely cast as central within mainstream social policy analysis, and that this lack of attention is a weakness. Do you agree, and if so, what is your assessment of the prospect for change?

두번째 문제를 다루고 싶은데, 쉽지 않다.
사실, 이번 학기 내내 고민해왔던 문제였으나,
아직도 나의 말로 정리하려니 단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그래도 데드라인이 있으니, 쓰기는 쓸것이다.
내일까지 무어라 쓰긴 쓰겠으나,
살아가면서, 공부하면서, 연구하면서
내내 내 자신에게 되물을 문제임에 분명하다.

언젠가 다시 보고 오늘의 나와 그때의 나와 생각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질문을 그대로 남겨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