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December, 2005

재난이란

Friday, December 23rd, 2005

말이다. 일테면 이런것이다. 추위때문에 우리집 수도 파이프가 얼어 터졌다. 주인없는 집에서 흘러흘러 넘친 물들이 바다를 이룰무렵 사건수습에 나서다. 흠뻑 젖은 집을 말리고 바닥을 들어내고 새바닥을 깔고 새벽을 칠해야 하는 대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비용은 자그만치 12000불 (대략 1200만원). 12000불은 쉽게 말하면, 내가 매 시험기간마다 몸살을 하며 사흘밤낮을 매기는 페이퍼들과 매주 전쟁을 치르기 전의 터질듯한 긴장, 전장에서의 피흘림… 이 모든 것들을 다 때려부은 합보다 1200만원은 크다. 다시 말해, 일년간 뼈빠지게 벌어도 12000불이 안된다는 것이다.

하루밤의 추위,파이프 동파라는 불가항력의 사건이 열과 성을 쏟아부은 가난한 시간을 조롱하는 듯하다.그러나, 원래 재난이란 그런것이다.그리고 바로 그런 재난을 대비하자는 것이 보험인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결론은 보험을 꼭 들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건강한 노동을 위해서, 아름다운 나이듦을 위해서… 아무쪼록 대비할 건 대비하고 살아야 하는 법이다.

아, 졸립다. 순리대로 자러가야겠다.

Speak your mind even though your voice shakes

Sunday, December 11th, 2005

두려움이나 공포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할 때
우리는 도망치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개를 돌려야 한다.
영어는 내게 잠재된 원초적인 두려움 중 으뜸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상대방과의 맞섬이 필요할 때 말때문에…나는 미리 접고 들어간다.
말을 못하고 그래서 복잡한 문제에 결부되면
결국은 내가 나를 방어할 수 없으리라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나를 제발로 기도록 한다.
아주 자주…
이렇때 여전히 나는 나를 불신하곤 한다.
이번학기 세미나 수업의 마지막에 박사과정 체어와의 면담이 있었다.
순간 번민했다.
나의 발언이 문제화될 때 내가 나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결국은 내 패컬티 교수가 한 학기 내내 보여준 만행에 가까운 불성실을
가능한한 차분히 이야기했다.
모든 불확실성이 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진실은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계속 나를 격려하면서…

그런데 오늘 아침 체어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기도 전에 내가슴이 뛰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이 바쁜 학기말의 와중에 쓸데 없이 일들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일말의 후회가 머리속을 휘리릭~ 훑어 지났다.
그녀는 계약보다 얼마나 더 많은 TA 부담을 져오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일종의 타임 트랙킹을 요청했다.
단지 확인의 차원에서 다음번 TA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으로 일이 일단락될지
아니면 더 커질지는 모를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일이 커진다면 이를 악물고 싸울 각오가 서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메일을 여는 그 짧은 2-3초간 나를 싸늘하게 지나간 그 두려움, 그 근심,
그리고 일말의 후회의 감정을 잊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어라는 철옹성 같은 장벽과 소수자로서 내가 가진 피해의식…
그리고 당하고 살까하는 삶의 조바심이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그게 서글프다.

이에 대해 너른 나무는 이민일세대들이 가진 공통적이 현상이라고 토를 달아줬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내가 가르치는 Hmong족 학생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아온 소수민족인 Hmong족출신임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이 사회에서 차별따윈 받지 않고 살았다고 했단다.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차별의기억을 지고 사는 삶, 그 고통의 반증이다.
고통의 깊이만큼 부정의 정도도 강할지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돌아가겠지만,
빠른 시일내에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기 전까지 나는 내가 가진 자의식, 피해의식을 깨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내가 경험한 부조리와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내 자신의 견해를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계속해서 발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Speaking out my mind, my thought…
이것이 나를 객관화시키고 나를 키울 거름이 되리라.
그래야 훗날 내가 내 아이에게 자신있게 일러줄 수 있으리라.
내가 어떻게 굴절된 나를 바로 펴 갔는지,
그리고 또한 그것은 내가 선 현실의 굴절을 펴는 것과 동일한 작업이라는 것을 말이다.

옳거니!

Sunday, December 11th, 2005

There has historically been an “inconsistence on the traditional family as the sole permissible locus of child rearing” (Carbone, 1994:398). As a result, in constructing the problems presented by as well as the solutions for the never-married mother and the divorced mother, the physical absence of a male is considered central, in the form of economic support accompanied by “rights” over children, introduces discipline and control and make the family “complete” in some mystical way. (Fineman, 2002, p.221).

오랜만에 머리가 정돈되는 느낌이다.

참으로 간명하게 marriage promotion policy, Child Support policy, 그리고 family structure 등등 미국 family support policy의 기본 전제를 설명하고 있다. He is social policy! 이 한마디가 미국의 개인주의적,가부장적, 전통적 가족 중심의 복지 이데올로기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상쾌함의 근저에는 어제 우리과 교수 라니가 세미나에서 이야기했던 복잡한 숫자놀음에 다름아닌 통계수치에 대한 현기증, socal fathering 논의에 대한 거부감, 근간의 모든 family policy에 대한 literature를 읽으면서 느끼는 공허함…이건 것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런것들이 내가 정말 무엇을 공부하고 싶은지, 누구랑 함께 하고 싶은지 등등의 현실적이고 정치적인 선택의 문제들과 결부되면서 나는 계속 멀미를 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