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이나 공포를 똑바로 마주하지 못할 때
우리는 도망치거나 아니면 적어도 고개를 돌려야 한다.
영어는 내게 잠재된 원초적인 두려움 중 으뜸이다.
영어가 모국어인 상대방과의 맞섬이 필요할 때 말때문에…나는 미리 접고 들어간다.
말을 못하고 그래서 복잡한 문제에 결부되면
결국은 내가 나를 방어할 수 없으리라는 원초적인 두려움이 나를 제발로 기도록 한다.
아주 자주…
이렇때 여전히 나는 나를 불신하곤 한다.
이번학기 세미나 수업의 마지막에 박사과정 체어와의 면담이 있었다.
순간 번민했다.
나의 발언이 문제화될 때 내가 나를 방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고 결국은 내 패컬티 교수가 한 학기 내내 보여준 만행에 가까운 불성실을
가능한한 차분히 이야기했다.
모든 불확실성이 나를 위협하고 있지만
진실은 이야기되어야 한다고 계속 나를 격려하면서…
그런데 오늘 아침 체어에게서 이메일을 받았다.
메일을 열기도 전에 내가슴이 뛰고 있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이 바쁜 학기말의 와중에 쓸데 없이 일들을 복잡하게 만들었다고
일말의 후회가 머리속을 휘리릭~ 훑어 지났다.
그녀는 계약보다 얼마나 더 많은 TA 부담을 져오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일종의 타임 트랙킹을 요청했다.
단지 확인의 차원에서 다음번 TA들의 처우개선을 위한 방안 마련으로 일이 일단락될지
아니면 더 커질지는 모를일이다.
그리고 이제는 일이 커진다면 이를 악물고 싸울 각오가 서고 있다.
하지만 말이다.
메일을 여는 그 짧은 2-3초간 나를 싸늘하게 지나간 그 두려움, 그 근심,
그리고 일말의 후회의 감정을 잊기는 어려울 것 같다.
영어라는 철옹성 같은 장벽과 소수자로서 내가 가진 피해의식…
그리고 당하고 살까하는 삶의 조바심이 사람을 참 초라하게 만든다.
그게 서글프다.
이에 대해 너른 나무는 이민일세대들이 가진 공통적이 현상이라고 토를 달아줬다.
그러고 보니, 얼마전 내가 가르치는 Hmong족 학생 중 하나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이 지역에서 가장 차별받고 억압받아온 소수민족인 Hmong족출신임에도 그녀의 아버지는
이 사회에서 차별따윈 받지 않고 살았다고 했단다.
주관적인 동시에 객관적인 차별의기억을 지고 사는 삶, 그 고통의 반증이다.
고통의 깊이만큼 부정의 정도도 강할지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돌아가겠지만,
빠른 시일내에 돌아가고 싶지만
돌아가기 전까지 나는 내가 가진 자의식, 피해의식을 깨어 나가야 할 것이다.
그것은 객관적으로 내가 경험한 부조리와 옳지 않은 일에 대해 내 자신의 견해를
어눌하지만 또박또박 계속해서 발언하는 것을 의미한다.
Speaking out my mind, my thought…
이것이 나를 객관화시키고 나를 키울 거름이 되리라.
그래야 훗날 내가 내 아이에게 자신있게 일러줄 수 있으리라.
내가 어떻게 굴절된 나를 바로 펴 갔는지,
그리고 또한 그것은 내가 선 현실의 굴절을 펴는 것과 동일한 작업이라는 것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