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분위기 있게스리 비가 오신다. 그리고 나는 분위기를 깨며 사정없이 졸아주셨다.
일주일간 풀렸던 몸을 이끌고 페이퍼의 세계로 돌아오니 매우 피곤하다. 그동안, 이주일치의 빨래를 해치웠고 먹고 싶던 음식을 원없이 해먹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집의 숙원사업이던 어린나무의 피아노장만 프로젝트를 달성했다. 처음에는 공짜 피아노를 넘보다가, 어느새 머리꼭대기까지 높아진 눈으로 새 피아노까지…구경 한번 잘 했다. 불황 극복 500불 대할인 프로모션을 끼고도 30년된 야마하 중고를 사려면 택스빼고 3000불이 든다고 했다. 에라이, 어차피 비싼놈, 때깔 좋은 새걸로 구경이라도 해보자하는 심산으로 새피아노 대리점을 호기롭게 둘러보기도 했다. 세전 6000불이였다. 결국, 우리는 6000불짜리 쌔삐도, 3500불짜리 30년산 피아노도 아닌, 나와 동갑의 앤틱 피아노를 1천몇백불에 사는 걸로 결론을 보았다.
어둑어둑한 저녁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빨간 노을이 이글이글 타는 101번 도로 위에서, 피아노가 참으로 무거운 물건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딱 30여년전, 빤딱거리는 내 까만 피아노가 이렇게 무거운 녀석이었다는 걸, 내 새끼의 피아노를 들었다 놓으면서 비로소 알게된다. 그 육중한 무게에 내 부모님의 허리는 얼마나 휘청거렸을까…내 등짝이 무거워져서야 알게 된다.
뭐랄까, 아연한 느낌이었다. 아이 셋을 둔 내 친구는 얼마전 이렇게 말했다. 빨리 늙고 싶다고… 빨리빨리 늙어 육십 쯤 되면 이 뻐근한 무게감, 이 묵직한 부채감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롭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아, 그래도 아직 나는 빨리 늙고 싶지 않다. 천천히 자연스럽게 늙고 늙어, 육십이 되고 칠십이 되고 싶다. 가끔 피아노처럼 무거운 넘이 앞에 떡 버티고 서 있다 해도, 생각하기 나름이다. 쌔삐도 좋지만 앤틱도 좋은거다. 나한테 맞는 놈으로다가 골라, 잠깐 낑낑대고 가다보면 그도 또 지나가는 것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