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the ‘숲 이야기’ Category

우리가 사는 세상

Tuesday, July 21st, 2009
<From “Paying for Kidney”, New Yorker, July20, 2009>

이것이 대체 무얼꼬?
뚫어지게 그림을 쳐다보다 급기야 옆의 타이틀로 눈이 갔다.
신장이란다.
신장매매 합법화에 대한 논쟁이 한창이란다.
장기가 매매되는 세상, 장기를 선물하는 세상… 상당히 원색적이지만 생각해보면, 그것이 원래 자본주의의 기본원리가 아니었던가…오로지 노동할 몸뚱아리를 팔아서만 생존할 수 있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잉여의 장기인 신장이 이제 그 교환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물론 장기매매는 불법적으로 오래전부터 이루어져왔다. 그 합법화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에 대해, 정치철학자 Peter Rawler가 이렇게 답했다.

“복지 수당이라뇨? 당신은 아직 신장이 두개나 있쟎소…”

몸뚱아리, 노동, 팔고 팔다 신장 하나마저 팔아치워야, 국가로부터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이 세상보다, 그림 속의 신장은 차라리 덜 원색적이다. 덜 섬뜩하다.

“You can imagine a scenario where someone would say, ‘Welfare? You’ve still got two kidneys!’ the political philosopher Peter Lawler has said. “There would be the expectation that your kidney might be understood as part of your net wealth.”

사람의 말이 아름답다

Wednesday, June 10th, 2009

어쩌자고 아직 모국어에 서툴은 내 어린 아이에게 나는 이 6.9작가선언을 들이댔던가… 읽어내려가는 동안 목이 메여왔다. 속수무책의 타는 감정도 대책없는 분노도…이렇게 사람의 말 속에 고스란이 아름답게  담아낼 수도 있는것이구나…싶었다.

이것은 사람의 말

작가들이 모여 말한다.
우리의 이념은 사람이고 우리의 배후는 문학이며 우리의 무기는 문장이다.
우리는 다만 견딜 수 없어서 모였다.

모든 눈물은 똑같이 진하고 모든 피는 똑같이 붉고 모든 목숨은 똑같이 존엄한 것이다. 그러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은 극소수 특권층의 이익을 위해 절대 다수 국민의 눈물과 피와 목숨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려 한다. 우리는 지금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사실이 수치스럽고 고통스럽다. 본래 문학은 한계를 알지 못한다. 상대적 자유가 아니라 절대적 자유를 꿈꾼다.

어떤 사회 체제 안에서도 그 가두리를 답답해하면서 탈주와 월경을 꿈꾸는 것이 문학이다. 그러나 문학 본연의 정신을 되새기는 것이 차라리 사치가 되어버린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다급한 마음으로 1987년 6월을 떠올린다.

박종철의 죽음이 앞에 있었고 이한열의 죽음이 뒤에 있었다. 그 죽음들의 대가로 민주주의를 쟁취했고 힘겹게 그것을 가꿔왔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할 의무가 있다.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 모든 것을 망각할 권리가 없다.

이명박 정권 1년 만에 대한민국은 1987년 이전으로 후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각자가 하나의 정부인 작가들이 이 자리에 모였다. 조직도, 집행부도, 정강도 없다.

우리는 특정한 이념에 기대어 발언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가 아무런 이념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내세운 ‘중도실용주의’라는 가짜 이념은 집권 1년도 못 돼 폐기해야 할 대상이 되어버렸다. 우리는 도처에서 헌법 위에 군림하는 독재의 얼굴을 본다. 용산 철거민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와중에 여섯 명의 무고한 목숨을 앗아가고도 이명박 정부는 끝내 사죄하지 않았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하여 국민적 저항에 직면했지만 저들이 행한 일은 위선적인 사과와 광범위한 탄압이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언론 장악을 기도했고 도심 광장과 사이버 광장에 차벽을 치고 철조망을 세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한국예술종합학교 사태는 이 정부가 시대착오적인 색깔론과 천박한 관료주의로 문화예술의 토대를 위협하고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을 겨냥한 사상 최악의 표적수사와 비열한 여론몰이는 그를 벼랑에서 투신하게 하였다. 민주주의의 가치는 매장되었다.

이 모든 일에 적극 가담한 정치검찰과 수구언론을 우리는 민주주의의 조종(弔鐘)을 울린 종지기들로 고발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는 굴종하고 죽은 권력에는 군림하면서 영혼을 팔고 정의를 내던진 정치검찰들, 증오와 저주의 저널리즘으로 민주화의 역사를 모독하고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조롱하는 수구언론에 우리는 분노한다. 우리가 저들과 같은 모국어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에 참혹해진다. 저들을 여전히 검찰과 언론이라고 불러야 하나. 곰팡이가 온 집을 뒤덮었다면 그것은 곰팡이가 슨 집이 아니라 집처럼 보이는 곰팡이일 뿐이다. 저 권력의 몸종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일반 원리와 보편 가치를 무자비하게 짓밟으면서 달려온 이명박 정권 1년은 이토록 참담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권력자와 그 하수인들에게서 우리는 깊은 절망을 느낀다. 저들은 수치를 모르고 슬픔을 모른다. 수치와 슬픔을 아는 것이 사람이고, 사람됨이라는 가치에 헌신하는 것이 문학이다. 우리는 문학의 이름으로 이명박 정부를 규탄한다.

이곳은 아우슈비츠다. 민주주의의 아우슈비츠, 인권의 아우슈비츠, 상상력의 아우슈비츠. 이것은 과장인가? 그러나 문학은 한 사회의 가장 예민한 살갗이어서 가장 먼저 상처 입고 가장 빨리 아파한다. 문학의 과장은 불길한 예언이자 다급한 신호일 수 있다.

아우슈비츠의 생존자 프리모 레비는 이렇게 적었다. “우리가 노예일지라도, 아무런 권리도 없을지라도, 갖은 수모를 겪고 죽을 것이 확실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능력만은 남아 있다. 바로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는 것이다.” 과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면 그래야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아직 종이와 펜이 있다. 그러니 동의하지 않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끝내 저항할 것이다.

가장 뜨거운 한 줄의 문장으로, 가장 힘센 한 문장의 모국어로 말할 것이다. 사람의 말을, 사람만이 할 수 있고 사람이니까 해야 하며 사람인 한 멈출 수 없는 그 말을. 아름답고 정의로운 모든 문학의 마지막 말, 그 말을.

우리는 작가입니다.
우리는 각자의 말을 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글을 씁니다.
우리는 각자의 나라를 가졌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겐 공통점이 있습니다.
우리가 쓰는 글의 바탕엔 언제나 인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념이 아니라 사람의 편에 섭니다.

우리는 모였습니다.
참혹한 오늘을 불러온 것도 우리이지만
참다운 내일을 만드는 이도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정권의 야만에 분노합니다.
사람이 설 자리가 사라진 현실에 분노합니다.

우리는 보고 싶습니다.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정치가의 얼굴을.

우리는 듣고 싶습니다.
아첨과 왜곡의 목소리가 아니라 공정하고 진실된 언론의 발언을.

우리는 느끼고 싶습니다.
이 땅의 주인은 국민이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확신과 자부를.

우리는 되찾고 싶습니다.
본래 우리 것인 광장과 집과 대지, 스스로 흘러 생명일 수 있는 강물을.

우리는 꿈꾸고 싶습니다.
그 어떤 권력에 의해서도 사람이 죽어나가지 않는 사회,
양심과 이성이 죄가 되지 않는 세상,
자유와 평등은 원래 사람의 것이라 믿고 자라날 수 있는 아이들의 미래를.

우리는 입을 엽니다.
이것은 사람의 말입니다.

—프레시안 2009년 6월 9일

어떤 추모

Saturday, June 6th, 2009

가장 아픈 추모의 글을 읽었다. 그런데 기사에 붙은 답글들의 대세는 “이것이 추모냐? 비판이냐?”라는 비아냥이다. 헐…

사람들이 한시대를 건너면서 씨실과 날실처럼 만들어낸 역사가 김진숙 님의 글 속에 고스란이 살아있다. 함께 싸우고,  돌아서서 가고, 적이 되고, 먼저 보내고,  아파하고…내가 가장 공감한, 최고의 추모사다. 어두운 면, 부정적인 면을 무조건 가리는 것이 과연 진정으로 고인을 기리는 것일까…

“노무현 변호사님, 다음 生에는 우리 노동자로 만나요”
[노무현을 기억하며] 노무현 ‘동지’를 꿈꾸며

프레시안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집회도 없고 수련회도 없는 휴일은 외려 잠이 일찍 깨요. 아무 일도 없는 게 믿어지지 않아서. 언제부터 저는 평화가 실감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걸까요.

아무 일도 없는 이상한 토요일. 아니나 다를까. 텔레비전 화면에 뉴스 속보가 뜨는군요.

“노무현 전 대통령 뇌출혈로 입원.”

검찰 조사가 시작되면 입원으로 시작해서 휠체어나 마스크가 구명보트처럼 등장하는 꼴을 늘 봐오긴 했습니다만, 당신은 그런 쇼를 할 사람은 아닌지라 스트레스가 어지간했나보다 생각했습니다. 10여 분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한 듯”이라는 자막이 뜨고 그제서야 뒹굴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나날이 일구 우일구하기 여념없는 시시껍절한 방송이 중단되고 속보가 이어지더군요. 경호원, 사저 뒤편, 부엉이바위, 세영병원, 양산부산대병원, 심폐소생술, 열상 따위의 일상과 밀접하지 않은 단어들이 바퀴벌레처럼 툭툭 튀어나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정신적 공황 상태까진 아니었지만 불면 탓으로 약간 멍한 채로 이틀을 보냈고 월요일 아침 부산역까지 가긴 했으나 조문은 못하고 역 광장을 몇 바퀴 빙빙 돌다 왔습니다. 선뜻 신발을 벗고 절을 하는 문상객들의 거리낌없는 몸놀림이 참 부럽다고 생각하며. 잠이 안오대요.

다음 날 다시 부산역엘 갔습니다. 역 광장을 또 빙빙 돌다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닥칠 불면의 밤이 성가셔 문상객들의 뒤에 얼른 붙어 섰습니다. 방명록에 몇 줄 쓰기도 했습니다.잠을 자야하니까.

“오랜 세월 동지였고 짧은 시간 적이었습니다. 1990년 변호사 접견 오셨을 때처럼 봉하 마을 어딘가에 앉아 각자의 위치가 만들어 낸 그동안의 원망과 미움들을 두런두런 털어낼 수 있으리라 여겼습니다. 곧…. 고맙고 죄송합니다.”

1990년. 제가 첫 징역을 살 때였습니다. 접견을 오셨었지요. 보통 변호사 접견은 재판 전날 와서(사실 재판 전날도 안 오는 변호사도 많습디다만) 재판 절차를 일러주고 이빨도 맞추고 하는데 재판 날짜와는 아무 상관없는 시기였던지라 많이 의아했던 만큼 20년 전인데도 이리 생생하네요.

접 견실에 먼저 오셔서 기다리시더군요. 보통은 재소자들이 한 시간 이상씩 주리를 틀면서 기다리는데. 요샌 교도소 반찬이 뭐가 나오냔 얘기, 여사에선 뭐하고 노냐는 얘기, 변호사가 해주던 징역살이 얘기, 남사에선 뭐하고 논다는 얘기, 법무부 시계도 가니까 재밌는 놀이를 많이 개발해서 징역을 잘 깨라는 얘기. 변호사가 접견을 와선 재판 이야긴 한 마디도 없이 노닥거리기만 하다 그 더디기로 유명한 법무부 시계가 세상에 한 시간이나 흘렀습니다.

“가야겠네” 일어서시길래 하도 황당해서 물었습니다.

“왜 오셨어요?”
“진숙 씨 징역살이 힘들까봐 놀아 줄라고 왔지요.”

그리고 당신은 정치권으로 갔고, 정치권으로 갔다는 건 권력을 탐하는 변절로 규정하는데 한치의 주저함도 없었으니 변호사 비용을 거침없이 떼먹고도 사기꾼의 돈을 떼먹은 것마냥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복직하면 갚으마. 유전 발견하면 갚으마. 보물선 찾는대로 갚으마. 막연한 약속이 선임비였던 시절이었으니. 그게 인권변호사의 당연한 책무였으니. 이제와 생각해보니 상실감이었어요.

그 시절 당신은 우리들의 유일한 빽이었는데. 공돌이 공순이 편을 들어주는 가장 직책 높은 사람이었는데. 당신이 있어 우린 수갑을 차고도 당당할 수 있었는데. 그때 직감적으로 생각했어요.

이제 더 이상 우리 편이 아니겠구나. 재판장 앞에서 수갑을 찬 채 잔뜩 주눅 든 우리를 향해, “피고인은 무죕니다” 외쳐 줄 사람이 이젠 없겠구나. 이제 재판에서 지더라도 찾아가 울 데도 없겠구나. 노동자들이 그들의 부엉이바위인 크레인 위에 올라갈 때 따라 올라가지도 않겠구나.

그리고 당신을 잊었습니다.

용감해서가 아니라 아무도 없어서 혼자 진행했던 1심 재판에서 당연히 지고 사무실을 찾아갔을 때, “왜 항소를 안했어요?” 라는 질문에 “항소가 뭔데요?” 라고 되묻던 저에게 “노동자가 항소를 알면 그건 노동자가 아니지” 하던 말도 잊었고, 노동자도 이론이 있어야 세상을 바꾼다며 함께 했던 소모임도 잊었고, 군사정권 시절 해고된 노동자의 그 막막한 눈빛을 들여다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유일하게 내 얘기를 그대로 들어주던 무료법률 상담소도 잊었고, 어느 날은 밤에 오라 길래 밤에 찾아갔더니 그날이 전태일이라는 노동자의 기일이 라고 변호사 사무실 구석에 조촐한 제상을 차려놓고 아무 말도 없이 유령들처럼 절을 하던 그 뭉클하던 밤도 잊었고, 함께 같은 거리를 달리던 6월 항쟁도 잊었고, 최루탄 가루가 싸락눈처럼 내린 범냇골 국민운동본부 옥상에서 막걸리를 나누던 걸판지던 뒤풀이도 잊었습니다.

그리고 침례병원이 초량에 있을 때였습니다.

노동조합 조합원 교육에 초청을 받았는데 앞 시간 강사가 당신이었더군요. 당신은 내려오고 나는 올라가던 계단에서 마주쳤습니다. 난 참 어색하기가 짝이 없습디다. 그냥 모른 척 할라고 했습니다만 “오랜만이네요. 잘 지내지요?” 굳이 손까지 내미시더군요. 그때 대답을 했거나 웃기라도 좀 했으면 지금 잠을 이루기가 좀 쉬었을까요.

그리고 당신이 출마한 대선에서 전 4번을 찍었습니다. 단 한 번도 단 한순간도 고민하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외포리를 한번도 벗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평생 1번을 벗어난 적이 없는 큰언니가 전화를 했더군요.

“이 노무헤니가 그 노무헤니지? 니 벤호사. 그 사람 찍었다. 너 인쟈 깜빵 안 가지? 복직두 되갓지?”

얼른 대답할 말이 떠오르질 않더군요.

제가 왜 “내 변호사”를 놔두고 4번을 찍었는지 우리 큰언닌 죽을 때까지 이해 못할 거예요. 2번과 4번의 극심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도 이리 막막한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그 미세한 차이를 설명하는 일은 저의 재주로는 난망한 일이 되어버렸습니다. 기뻐서 우는 사람도 있습디다만 이회차이가 당선된 거보다 노무혀이가 당선된 게 노동자들에게는 더 힘들 거라고 떠들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노동자들의 고립은 깊어졌고 고착화되었습니다. 김영삼이가 당선되었을 때 운동권이 3분의 1이 떨어져 나갔고, DJ가 대통령이 되었을 때 이른바 재야가 사라졌고,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그거 아세요. 당신은 조·중·동이랑 열심히 싸우셨습니다만 우리에겐 조·중·동이랑 한편처럼 보인 거.

▲ “당신이 대통령이 되면서는 그야말로 오롯이 노동자들만 남았습니다. 한 사업장에서 수천 명이 한꺼번에 해고될 때 그 무지막지한 자본을 향해 호통쳐주는 어른 하나 없습디다. 노동자들이 핏발 선 눈으로 거리로 나설 때 역성들어주기는커녕 죄 우리만 나무랍디다.” ⓒ사람사는세상

“야~ 기분좋다!” 시며 봉하로 가셨을 때 오리농법보다 더 중요한 일은 농민들의 삶의 실상을 들여다보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왜 목숨 걸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반대했는지. 그리고 전용철, 홍덕표 그들의 죽음에 당신이 늦게나마 사과를 하면 참 좋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랬다면 제가 봉하 마을을 갔을까요. 아마 갔겠지요. 그리고… 김주익 얘기도 했을까요. 아마 그 얘긴 못했을 거예요. 말로 꺼내긴 크나큰 상처였으니까.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 말씀.

유 난히 노동자들에겐 가혹하셨습니다. 2003년도 한진중공업에서 저는 한꺼번에 두 명의 지기이자 동지를 잃었습니다. 김주익은 600여 명 조합원의 명퇴에 맞서 2년을 싸웠고 노사가 합의를 했고 그 합의를 회사가 번복을 했고 그래서 크레인에 올라갔고 그 크레인 위에 129일을 매달려 있다가 아시다시피 목을 맸습니다.

죽음이 투쟁의 수단이 되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시대는 정말 지났을까요. 벼랑 끝에 몰린 노동자들에게 종종 삶과 죽음은 자연의 한조각인 것을….

저는 당신을 부정한 게 아니라 당신을 넘어서고 싶었습니다. 착한 사람이 지배하는 세상이 아니라 지배가 없는 세상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당신의 시대에 그 꿈은 가장 허황되고 지리멸렬해졌습니다. 때론 우리가 품은 꿈이 너무 초라했고 궁색했습니다. 당신의 시대에 가장 많은 노동자가 잘렸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구속됐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비정규직이 됐고 그리고 가장 많은 노동자가 죽었습니다.

그리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은 노동귀족으로 격상됐고 그들은 언론과 자본은 물론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조차 적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이기주의를 꾸짖으십디다만 동료가 수백 명씩 잘리는 걸 목격한 노동자가 비정규직에게 내밀 손이 남아 있겠습니까. 저 살아남는데 써야지.

징역을 살 때 만난 사형수가 있었어요. 이 여잔 영치금이 한 푼도 없는 개털이었는데 새로 신입이 들어오면 아주 불쌍한 표정으로 샴푸나 속옷을 사달라는 거예요. 출소한 사람들이 쓰다만 물건들도 다 그 여자 차지였죠. 언제 죽을지 모를 사람이 사소한 물건에 집착하는 게 도덕의 눈으로 보자면 참 추접스럽습디다. 그 여자 집행되고 보니 샴푸나 속옷 나부랭이가 구석구석에서 쏟아져 나옵디다. 백분의 일도 못쓰고 죽었죠. 생에 대한 나름의 집착이었던 거죠. 샴푸 생길 때마다 빌었겠죠. 이거 다 쓰고 죽자.

정규직 노동자들은 삶의 벼랑에서 그런 심정으로 잔업하고 철야를 합니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를 정규직의 삶을 그딴 식으로 저축하면서. 그 무렵쯤이었을 거예요. 변호사비용을 이제 그만 갚아야겠다고 생각한 건. 당신의 시혜나 은전에서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한 건. 적이 될 거라면 호적수이고 싶었습니다. 실력도 한참 모자라고 열정도 전만 못하고 진정성마저 잃어 그리 되진 못했습니다. 그게 참 부끄러워요.

똑똑한 사람들은 다 떠나 우리를 속속들이 아는 가장 무서운 적이 되었고 남은 자들은 동네북이 되어 초딩들마저 두들겨대고 천덕꾸러기가 되어 크레인엘 올라가고 굴뚝엘 기어 올라가도 언놈 하나 눈길주는 놈이 없어졌습니다. 당신이 대통령이 되었을 때 고등학교 밖에 못나온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다고 입 달린 사람은 죄다 침이 마릅디다만 고등학교도 못나온 저 같은 노동자들은 당신의 시대에 대부분 절감해야 할 원가가 되어 구조 조정당했고 효율화를 위해 비정규직이 됐습니다. 차라리 군사독재 시절엔 대드는 노동자만 잘렸으나 당신의 시대엔 남녀노소가 잘렸습니다. 서민의 벗이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나 부자와 빈자의 간극은 훨씬 더 까마득해졌습니다. 당신이 변호사에서 국회의원이 되고 대통령이 되는 24년의 세월 동안 전 아직 복직도 못한 해고노동자로 찌질한 50대가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짧은 시간 동지였고 오랜 세월 적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었어요. 뜨겁고 바른. 만고 씰데없는 소립디다만 그래서 대통령 같은 거 하지 말았으면 참 좋았겠단 생각, 지금도 해요.

불안하고 불길한 기운으로 떠돌던 예감이 당신의 죽음으로 확연해집니다. 한 시대가 갔다는….

이제 상고출신이 변호사가 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양양한 가도가 보이고 그 길을 편하게 가고자 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의 있습니다!” 외칠 때, 그 외침에 뒤돌아보는 사람도 이제 더는 없을지도 몰라요.

만 명이 울어주면 천국에 간다했던가요. 천국에 가셨을 거라 믿어요. 진심으로.

김주익 곽재규 배달호 김동윤 최복남 이용석 이해남 이현중 정해진 하중근 박수일 허세욱…. 당신의 시대에, 만 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서러움으로 억울함으로 목 놓아 울었던 죽음들입니다.

당신처럼 벼랑 끝에 내몰렸던….

벼 랑 끝에 내몰린 노동자들의 죽음을 당신이 이해해주길 바란 적이 있었어요. 하도 야속해서. 노동자의 삶을 안다는 사람이 어찌 저럴 수가 있나 너무 미워서. 아무리 야속하고 미워도 그런 바람은 품지 말걸 그랬다 싶어요. 애증도 부질없어 졌습니다.

언젠간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말들이, 할 수 있으리라 여겼던 말들이 기형도의 시처럼 떠돌다 때때로 부딪히겠지요. 이제 변호사 비용은 영원히 안 갚아도 되게 생겼습니다.

다 음 생에 오실 땐, 너무 똑똑하게 오지 마시구려. 사법시험 같은 것도 합격하지 마시구요. 그냥 태생대로 기름밥 먹는 노동자로 만났으면 해요. 저는 당신에게 변절이라 손가락질 할 일 없이, 당신은 절더러 경직되었다거니 세상을 모른다거니 한심해 할 일 없이. 떠날 일도 보낼 일도 없이 그냥 내내 동지로. 그래서 언젠가 하셨던 말씀대로 자본가가 지는 해라면 노동자는 뜨는 해다. 그 멋진 말씀 그대로 실천할 수 있는 순수한 열정, 남다른 정의감 그대로 만날 수 있길.

다시는 미워할 일도 상처 받을 일도 이렇게 미어질 일도 없이…

* 이 글은 민주노총 부산본부 홈페이지에도 실렸습니다.

삥뜯는 학교, 삥뜯는 사회

Sunday, May 10th, 2009

지난주 학교에서 교육기금 마련을 위해 아이들이 걷기대회 (이름하여 Walk-a-thon)를 한다는 돈을 기부하라는 봉투를 받았다. 지난 학기에 이미 한번 했던 걷기대회 (원래는 1년에 1번했다)를 새삼 또 한다기에, 왠 Walk-a-thon?했더니만, 어린나무가 아주 진지하게, 우리 학교가 돈을 많이 잃어버려서 우리가 열심히 걷고 달려야 한다고 대답해주었다.

지난해 Lehman Brothers파산으로 150 million 달러의 (그냥 큰 숫자는 큰 돈이려니 하고 넘어가는터라, 이게 대체 얼마인지는 모르겠다) 거금을 카운티 투자펀드가 잃어버렸고 교육예산 삭감, 위기…등등 빈번한 교육재정 위기 통지를 받아온 바 있다.

결국, 또 관리자의 무능으로, 교육시스템의 문제로 불거진 교육재정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학부모들은 가뜩이나 얄팍해진 주머니돈을 속수무책으로 또 털어 넣어야 할 상황이다. 아이를 볼모로 잽힌 죄다.

한심하고 억울한 심정에 며칠을 두고 돈을 보내지 않았더니, 어제 스쿨디스트릭트에서 가정통신문 한장이 왔는데, 이게 거의 협박의 수준이다. 한집당 최소 $25을 내야 하고, 이번 걷기대회가 성공하지 못할 시, 내년부터 초딩 4학년부터 8학년까지의 음악수업이 없어질 거라구, 특히 현재 3학년 학생들의 부모들은 유념하라고 했다. 삥뜯는 경찰에 대해 평소 깊은 유감을 가지고 있던 시원한 나무, 그보다 높은 삥뜯는 상대를 만난 것이다. 더 깊은 유감을 가슴에 품었으나 이번에는 돈을 늦게내는 것으로 조금 앙탈을 부릴뿐, 잽힌 아이의 안전을 위하여 과감히 투항을 결정, 돈 30불을 봉투에 넣었다. 씁쓸하다. 돈 30불이 아까운 게 아니라, 언제까지 학교는 이런식으로 아이들의 다리품을 팔아 학부모들의 유리지갑에서 삥을 뜯어 문제를 해결할 셈인지 그 비젼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답답함을 느낀 거 나 혼자만이 아닌 모양이다. 결국 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나서 아이가 덧붙인 말이, “엄마, 근데 이번에는 아직까지 아무도 돈을 안가지고 왔어요.” 내일모레 걷기대회까지는 불과 이틀이 안남았는데 말이다…

그나저나, “그 많은 삥들은 대체 누가 다 먹었을까…”

‘큰’의사 선생님

Tuesday, February 3rd, 2009

Jim Yong Kim

Treating the “Untreatable”
By TRACY KIDDER

Posted April 30, 2006 What does it mean to be the chief of both the Department of Social Medicine at Harvard Medical School and the Division of Social Medicine at Boston’s Brigham and Women’s Hospital? For Jim Yong Kim, 46, it means trying to solve some of the world’s most difficult problems.

Ten years ago, Kim was working in the slums of Lima, Peru, with a team of doctors from the charity Partners in Health, based in Cambridge, Mass. They encountered an epidemic of drug-resistant TB. Experts had long agreed that it was impossible to treat this disease in such a setting. Kim and his colleagues proved the experts wrong. Moreover, Kim led a campaign that forced down the prices of the necessary drugs about 90%. Since then, 36 countries have adopted the protocols Kim and his colleagues devised.

“If we can do this with drug-resistant TB, why not with AIDS?” Kim said to me when I first met him. In wealthy countries, AIDS has become a treatable disease. But in what is euphemistically called the developing world, millions still die from it every year, and only 300,000 were being treated as of 2003. Working for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Kim created a campaign to increase the number treated to 3 million people by 2005. He called the effort 3 by 5. An impossible goal, many experts felt, and they were right. But by 2005, more than 1 million new patients were being treated, and the total in Africa had increased eightfold. In the high councils of international health, the 3 by 5 campaign was, as Kim put it, “like a bowling ball thrown into a chess match.” Officials who two years ago were arguing against universal treatment for AIDS now say they were in favor of it all the time.

One of his students told me that Kim was his most inspirational instructor; he made you believe you could change the world. I have no idea what he’ll do next. But looking forward to it gives me a sensation that feels a lot like hope.

Kidder described Kim’s work in Mountains Beyond Mountains

(Source: http://www.time.com/time/magazine/article/0,9171,1187277,00.html)

공부를 하면서 이곳에서 만난 대부분의 교수들은 선생님이기 전에 연구자였다. 연구중심의 ‘일명’ 좋은 학교일수록 교수는 그랜트와 논문으로 평가받는다. 가르칠 고민을 할 시간도 없고, 그래서 고민을 하는 교수도 드문 듯하다. 학자가 좋은 선생이랑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가 가야 할 길에 대한 혼란은 더욱 커졌다.

어쨌든, 수년간의 대학원 생활을 통해, 좋은 선생을 만날 수 있는 가능성은 운수소관일뿐이라는 체념에 가까운 깨달음에 다달았다. 그런데, 김용 선생에 대한 기사를 읽으면서 나를 가장 사로잡은 구절은 그의 제자가 한 말이다. 그는 자신의 학생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믿음을 가져다 준 피가 끓는선생님이었단다… 불치의 병이라는 에이즈가 사실은 불치의 병이 아님을 증명해 보여준 사람, 의사가 한 명의 아픈 사람을 고치는 일 만이 아니라 아픈 사회를 고치는 일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삶으로 보여준 사람…그래서 그는 그냥 교수가 아니라 선생님이고, 그냥 의사가 아니라 큰 의사인 듯하다.

그리고 그가 한국인이라서 자랑스럽다. 하하.

그를 백악관으로 보내 오바마 정부 공중보건정책을 위해 일하게 하자는 서명운동이 확대되고 있다. 나도 방금 싸인하고 왔다.모처럼만에 기분좋은 싸인을 했다. 관심있으신 분들은 요기로→ http://spreadsheets.google.com/viewform?key=pawQlLc1xLRAufYrQdnKiK


기도

Tuesday, February 3rd, 2009

치명적인 시, 용산 –한겨레 21 [2009.02.06 제746호]

강압적 일제고사 시행에 반대하는 교사들을 해임해버리자, 정부 정책을 냉소하고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는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를 잡아들이자, 낙하산 사장 취임에 반대한 한국방송 직원들은 취임 직후에 잘라버리자, 그리고 이제는, 생존권을 주장하며 저항하는 철거민들은 특공대를 투입해 진압하자… 라는 생각을 할 수는 있다 치자. 놀라운 것은 그들이 ‘한번 생각해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들은, 실행에, 옮긴다.

이 사태는 이제 정치학이 아니라 정신병리학의 소관처럼 보인다. 이 정권은 환자다. 그들에게는 초자아(Super Ego)가 없는가. 민주화 이후 그토록 더디게 우리 내면에 겨우 자리잡은, ‘이런 일은 이제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는, 그 초자아가 그들에게는 없는가. 없는 것 같다. 그러니 죄의식도 없는 것이다. 이드(Id)만 있는 권력이라니. 꿈이 곧 현실이고 소망인 곧 실천인, 그런 권력이라니. 지난 1월20일 우리가 목격한 것은 이드가 다스리는 나라의 진상이다. 열흘이 지났지만 아직도 사죄하는 사람은 없다. 본래 이드는 사죄하지 않는다.

시를 읽는 일이 한가롭다는 생각 때문에 용산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좋은 시는 절박하고 또 정치적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랑시에르는 정치와 예술이 ‘근본적으로’ 연동돼 있다고 주장한다.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나타나서 그간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로 무언가를 주장할 때 시작되는 것이 정치다. 그러니 ‘보이고 들리는 것’들을 둘러싼 완강한 질서를 재조직한다는 측면에서 예술과 정치는 하나다. 그렇다 해도 새해 벽두에 가장 참혹하고 치명적인 시는 시집이 아니라 용산에 있었다. 그래서 시가 아니지만 시이기도 한 문장들을 읽는다.

첫 번째 문장. “용산의 아침 작전은 서둘러 무리했고, 소방차 한 대 없이 무대비였습니다. 시너에 대한 정보 준비도 없어 무지하고, 좁은 데 병력을 밀어넣어 무모했습니다. 용산에서 벌어진 컨테이너형 트로이 목마 기습작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졸속 그 자체였습니다. 법과 질서라는 목표에만 쫓긴 나머지 실행 프로그램이 없었고, 특히 철거민이건 경찰이건 사람이라는 요소가 송두리째 빠져 있었습니다.”(문화방송 < 뉴스데스크>, 2009년 1월20일, 클로징 멘트)

신경민 앵커가 직접 쓰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멘트를 옮겨 적었다. 나는 이 문장들에서 시를 봤다. 맨 앞의 두 문장은 거의 비문(非文)이라고 해도 될 만큼 문법적으로 위태롭다. 그러나 이 위태로움 속에는 어떤 에너지가 있어서 흠을 잡을 수가 없다. 이 두 문장을 실어나르는 팽팽한 대구법에서는 분노를 다스리기 위한 안간힘 같은 게 느껴진다. “말을 한다는 것은 총을 쏜다는 것이다”라고 사르트르는 말한 적이 있거니와, ‘무리’ ‘무대비’ ‘무지’ ‘무모’로 이어지는 네 단어는 네 발의 총성처럼 들린다. ‘트로이 목마 기습작전’이라는 비유 역시 시적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마지막 문장이다. 여기서 “사람이라는 요소”라는 말은 ‘과격시위’ ‘진상조사’ ‘책임자 처벌’ 등등의 삭막한 단어들을 단숨에 뜨겁게 관통해버린다.

두 번째 문장. “이게 기름이기 때문에 물로는 소화가 안 됩니다. 소방이 지원을 해야 합니다. 이거는 물로 소화가 안 됩니다.”(1월20일 오전 7시26분 경찰 교신 중에서) 이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며 진저리쳤다. 참사의 현장에서 하염없이 퍼부어지던 물대포는 망루의 사람들을 쓸어버려야 할 한낱 해충으로 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해충이 아니라 생과 사의 극한에서 발화(發火) 직전에 있는 사람들이었다. 경찰은 시너에 붙은 불에다 무의미한 물대포를 15분 동안 쏘아댔고 그동안 철거민과 경찰이 타 죽었다. ‘물로는 소화가 안 된다’라는 저 문장 속에 이 참혹한 부조리의 핵심이 응축되어 있다. 서민들의 희생을 딛고 힘있는 자들의 배를 불리는 재개발 사업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지 않고 그저 힘으로 밀어붙이는 일이 부조리이고, 그들의 저항이 진화되지 않을 것이라는 게 핵심이다. 저 다급한 목소리의 본의와는 무관하게 저 문장이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도 진짜 시는 그날 망루에 타오른 불 자체일 것이다. 앞에서 보이지 않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을 보이고 들리게 만드는 것이 정치이자 예술이라는 요지의 말을 했다. 실상 언젠가부터 철거민들은 대다수의 일반 국민들에게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존재였다. 철거현장에서 철거민들과 함께 용역깡패와 맞서 싸우던 한 시절의 386세대들도 이제는 뉴타운 개발이익에 마음을 빼앗긴다. 철거민들은 ‘없는 존재’가 돼버렸다. 그들이 던진 화염병은 우리가 여기 있다고, 우리는 유령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다. 농성자들과 경찰의 주장이 엇갈리는 가운데 현재까지 검찰은 발화 원인이 불명확하다고 밝히고 있다. 그 화인(火因)이 진실로 불명확하다면, 그건 그 불이 목숨을 걸고 씌어진 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덧붙이자. 화염병은 시가 될 수 있지만 시는 화염병이 될 수 없다. 이 긴장을 포기하면 시는 사라지고 만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from http://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4260.html)

25년만에 만난 내 어린시절 친구는 첫 아이를 낳으면서 하느님을 찾았다고 했다.

아이를 위해, 아이가 살아갈 이 거친 세상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졌다고…

나도 기도를 하고 싶다.

죽은자와 살아 남은 자 모두를 위해…

어쩌면 망루의 불은 아직도 타고 있는지 모른다…

나에게 빵을 달라!

Wednesday, June 4th, 2008
06/04/2008 NY Times, Emilio Morenatti

 

 

2008년 5월의 풍경이다.
파키스탄에서 구호식량 지급을 기다리는 필사적인 손들이 우리에게 묻는다.
이 야만의 시대에 대해서…

옥수수와 콩은 바이오연료로 바뀌어 자동차의 먹이가 되고
대신,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다.
며칠전 열린 식량과 기아위기에 대한 국제 대책회의에서
최대의 논쟁점이 되었던 것은 옥수수의 에탄올연료 사용문제였다.
배럴당 국제유가가 130불을 넘나드는 고유가 시대에
바이오에탄올은 대체에너지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은 엄청난 보조금과 세금혜택을 통해 옥수수산업을 육성해온

최대의 바이오에탄올 생산국이다.

문제는 이러한 바이오에탄올 정책이

급등하고 있는 국제 옥수수가격, 국제 곡물가격 인상의 주범이라는 점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꼬맹이한테 물어도 답이 자명한 문제를 가지고

사람들은 아직도 싸움박질이다.

인간을 위한 식량이 먼저냐? 인간을 위한 연료가 먼저냐? 면서 말이다.

굶주리지 않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정책, 굶주리지 않는 소수의 나라들에 의한 정책이
굶주리는 사람들을, 그들이 내미는 저 필사적인 손들을 외면하고 있다.
참으로 야만의 시대다.

 

"Our father, give bread to those who are hungry
and, to us who have bread, give a hunger for justice"
–Rev. Theodore Hesburgh

 

아이야 가거라, 가서 맞서 싸우거라…

Wednesday, June 4th, 2008

자려고 누워서 아이와 오랜만에 기도를 했다.

"우리 어린나무 건강하고 착하게 잘 크게 도와주세요.
우리 너른 나무 건강하고 잘 지내게 도와주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게 도와주세요.
그리고
촛불시위에 참여한 모든 분들 다치지 않게 지켜주세요.
나쁜 대통령 나쁜 관리들이 물러나게 도와주세요…"

끝없이 이어지는 기도의 목록들을 보면서
내가 참 많은 것들을 원하고 바라고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였다.
고요히 누워 있던 아이가 이미 잠이 든 줄 알았던 내 아이가 갑자기 물었다.
"엄마, 아빠도 거기 시위대에 갔을까?"
"왜?"
"무서워, 아빠가 다칠까봐…엄마,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자!"

이리하여 밤중에 난데 없이 아빠에게 전화를 하게 되었다.

아빠와 전화를 끊은 어린 나무가 물었다.
"엄마, 엄마도 시위하러 갈거야?"
"응, 우리 동네에서도 하면 갈거야."
"가지마, 너무 무서워…엄마가 미국경찰도 똑같다고 했쟎아…"

그제 인터넷으로 한국 방송과 신문을 보면서 아이에게 광우병 시위를 설명해주었다.
그때 본 끌려가던 피에 젖은 누나들의 모습, 쓰러진 형아들의 모습, 몰매맞고 물매 맞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이에게 너무 강했는지도 모른다.
걱정에 떠는 아이를 위해 가슴이 따뜻해지는 시위 사진 하나를 골랐다.


사진출처: 한겨레 뉴스, 이정용기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이 자식이련만
그런 우리 아이들이 세상의 밝은 양지에서만 자랄 수 없다면
그들에게 세상을 올바르게 읽는 법, 두려움을 이기고 나아가는 법,
그리고 제대로 싸우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저렇게 촛불을 들고 앉은 아가가
언젠가는
커다란 물줄기에 맞서 새벽의 찬공기를 가르며
춥고 떨릴지라도 팔짱끼고 버티고 싸울 줄 아는
젊은이가, 혹은 늙은이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나는, 그래서 기도한다.
우리 아이가 떨리는 두려움을 떨치고 나아갈 수 있는 젊은이로 커가기를 기도한다.
내가, 떨리지만, 한없이 떨리지만,
내 소중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엄마로 커가기를 기도한다.
아이야, 가거라.
가서 맞서 싸우거라…
엄마가 네 뒤를 따르고 있다.

2008년 6월 1일

Wednesday, June 4th, 2008

2008년 6월 1일 사진출처: 오마이뉴스 권우성


타는 목마름으로
김 지하

신새벽 뒷골목에
네 이름을 쓴다 민주주의여
내 머리는 너를 잊은 지 오래
내 발길은 너를 잊은 지 너무도 너무도 오래
오직 한 가닥 있어
타는 가슴 속 목마름의 기억이
네 이름을 남 몰래 쓴다 민주주의여
아직 동트지 않은 뒷골목의 어딘가
발자국 소리 호르락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외마디 길고 긴 누군가의 비명소리
신음소리 통곡소리 탄식소리 그 속에 내 가슴팍 속에
깊이 깊이 새겨지는 네 이름 위에
네 이름의 외로운 눈부심 위에
살아오는 삶의 아픔
살아오는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되살아오는 끌려가던 벗들의 피 묻은 얼굴
떨리는 손 떨리는 가슴
떨리는 치떨리는 노여움으로 나무판자에
백묵으로 서툰 솜씨로
쓴다
숨죽여 흐느끼며



2008년 6월에 김 지하의 시를 다시 읽었다.
목이 자꾸만 메어온다…

 

 

No Human is Illegal

Wednesday, April 12th, 2006



너른 나무의 블로그에서 이민법 시위관련글을 읽었다.
트랙백을 하려고 했는데 안되는 관계루다가 짧게 메모해둔다.

1. 이민법문제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1세계 전체가 고민하는 문제이다. 층화된 세계가 글로벌라이즈할 때 생겨날 수 밖에 없는 문제가 노동의 이동, 즉 사람이 움직이는 문제이다. 미국의 경우 이민인구가 전체인구의 12%에 달하고 있고 31%의 성인이민자들이 고등학교 졸업을 못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하버드의 교수 Christopher Jencks는 미국의 오랜 이민역사를 네개의 시기로 나눈다. 1965년 Nationality Act이후 현재에 이르는 시기는 낮은 이민자들의 교육수준 (열에 일곱이 멕시칸), 이민자와 원주민 사이의 심각한 임금 불평등으로 특징지워지는데, 미국사회에서 경험하는 불평등으로 인해 이민자들은 더이상 영어를 배우고 미국화하려는 동화의 노력을 포기한다는 "Cultural Laissez-faire"에 대한 설명이 흥미롭다.

2. 이러한 Jencks의 설명은 미국중심적 관점에 기초하고 있지만, 소수화되는 백인인구와, 다수화되는 라티노인구의 유입과 급격한 증가를 고려해볼 때 의미있는 해석이다. 결국, 영어를 배우지 않고도 살아가는 미국, 스페인어만하고도 살아갈 수 있을 미국에 대한 백인의 위기감은 각주로 확산되고 있는 영어공용어 채택운동, 반이민자 연대의 움직임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3. 이런 ‘이민’이라는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것은 이민자로서 이 땅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존재조건에 기반한다. 그래서 요즘들어 너른나무와 나는 이민을 꿈꾸는 친구들과 이민을 꿈꾸는 한국의 중상층과, 한국으로 돌아가기를 고집하고 있는 우리들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테러의 위협과 죽음의 공포가 일상이 된 이라크에는 중간계급이 없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배우고 있는 사람들은 살기위해 요르단이나 다른 나라로 가서 가난한 육체노동자로 생계를 전전하고 있단다. 한국의 조기유학과 이민열풍이 과연 어느정도의 중간계급의 인구이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좌우지간 내가 만난 모든 사람들은 예외없이 ‘떠남’을 꿈꾸었다. 대부분의 그들은 그래도 혜택받는 중산층이었지만 한국으로부터 탈출을 꿈꾸었다.

4. 이라크의 전쟁과 테러가 중간층 공동화를 낳았다면 한국은 무엇때문인가? 교육열? 글쎄다. 어쨌든, 이러한 중간층의 이탈, 3세계민들의 1세계로의 탈출을 향한 꿈은 각 나라의 구체적인 현실과 결합하여 전세계의 일반화된 현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자본과 머리를 가지고 움직이는 노동의 이동과 죽음을 걸고 국경을 넘는 가난하고 저급한 노동의 이동은 ‘이민자’의 틀 속에서 하나될 수 있을까? 다른 질들의 노동들은 과연 연대할 수 있을까?

5. 마지막으로, 가운데가 빠져나간 3세계의 미래에 대해…당신은 낙관할 수 있는가???

이민법 시위를 보며, 너른 나무의 글을 보며 들은 생각들이다…